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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고정민]亞대중문화 주도권 경쟁서 앞서려면

입력 | 2010-05-07 03:00:00


일본 경제산업성은 최근 ‘문화산업대국 전략’을 산업구조심의회의에 제출했다. 콘텐츠 패션 식품 관광 등 문화산업을 자동차 전자산업과 나란히 21세기 일본경제의 리딩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문화산업이 경쟁력 원천으로서 일본 산업 전체의 글로벌화와 국가의 소프트파워 제고에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전략의 초점을 맞췄다.

관심을 끄는 사실은 전략수립에 한국을 벤치마킹했다는 점이다. 명확한 비전과 전략으로 콘텐츠 산업 강국을 지향하는 한국의 크리에이티브 산업 진흥정책을 영국의 창조산업정책과 함께 일본이 지향해야 할 모델로 적시하면서 한국의 정책 사례를 곳곳에 인용했다.

과거 우리가 선진국 도약을 위한 정책 모델을 일본에서 찾았다는 사실을 회상해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1980, 90년대 일본정부의 산업정책이나 소니 마쓰시타 도요타와 같은 일본기업의 전략을 열심히 벤치마킹했다. 직장에서는 일본어 강좌가 붐을 이뤘고 일본의 새로운 기업전략과 정부정책 자료를 입수해 밤새워 해석하여 보고하던 시절이 있었다. 일본 사례가 있으면 어떠한 기획서도 무사통과할 정도로 일본의 정책과 전략은 우리에게 성경과 같은 존재였다. 역사는 돌고 돌아 이제는 일본이 우리를 모델로 삼을 정도로 상황이 역전됐다.

문화산업 분야에서도 존재감조차 없었던 한국은 실로 많은 성장을 거두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에 힘입어 국내 문화산업은 과거 10년 사이에 매출액이 3배 이상 성장했고, 수출은 매년 20% 이상씩 증가했다. 서비스 산업으로는 드물게 해외수출에도 성공하여 종주국으로서 온라인 게임은 수출이 전체 매출의 40%에 이른다. 아시아 지역의 한류 붐은 점차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도 정부는 아시아 최대 컴퓨터그래픽 생산기지화, 콘텐츠 분야 1인 창조기업 육성, 이야기산업 활성화 정책 등 콘텐츠 산업 시류에 맞게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향후 3년간 콘텐츠 생태계 프로젝트를 위한 5000억 원 규모의 개발사업, 2000억 원 규모의 글로벌펀드 조성 등 대규모 지원투자는 일본으로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다.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성장한 한국의 문화산업과 정부정책은 일본 정부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의 문화산업은 일본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일본은 세계 2위의 문화산업 대국이다. 일본의 방송용 애니메이션은 세계시장의 60%를 차지하며 일식집은 미국에만 9000여 개나 있다. 일본의 닌텐도와 소니의 게임은 세계시장을 압도한다. 또한 일본 내수시장은 기업이 채산성을 맞출 수 있을 정도의 경제규모여서 사업 환경도 우리보다 유리하다.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일본은 이번 전략에서 막강한 문화산업을 활용하여 저팬 브랜드를 발신하고, 크리에이션 인재의 창의성을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문화산업을 지렛대로 활용하여 타 산업의 경쟁력 제고는 물론 국가이미지나 국격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쿨 저팬’으로 불리는 일본 문화를 전략적으로 키워 전 세계에 알리고 경제적 이익으로 연결하려는 전략이다. 이면에는 아시아에서 대중문화 주도권을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문화의 지역화 현상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아시아에서는 대중문화 선점을 위해 한중일 3국 간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일본은 쿨 저팬, 한국은 한류, 중국은 화류(華流)를 내세운다. 일본과 중국의 강력한 도전 속에서 우리나라는 모처럼 형성된 한류를 이어가고 문화산업의 정책추진 드라이브가 느슨해지지 않도록 고삐를 당겨야겠다.

고정민 한국창조산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