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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리더 인터뷰]조혜정 GS칼텍스 여자배구단 감독

입력 | 2010-05-07 12:26:38


"진짜 164㎝가 맞을까?"

그의 키를 놓고 논쟁이 벌어질 정도로 배구선수로는 너무 작았다. 하지만 엄청난 강타를 코트에 내리꽂으며 아시아 최고의 스파이커로 활약한 그에게 외국기자들은 '나는 작은 새(Flying little bird)'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한국 스포츠 구기 종목 사상 첫 올림픽 메달 획득의 주역이자, 한국 여자 배구 첫 이탈리아 진출 선수였던 그가 이번에도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코트로 돌아왔다.

지난달 15일 여자프로배구 GS칼텍스 사령탑에 선임된 조혜정(57) 감독. 국내 프로 스포츠사상 첫 여성 감독이다.

1일부터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해월리 LG인화원 내 체육관에서 팀 훈련을 시작한 그를 만났다.

조 감독은 "GS칼텍스 구단으로부터 감독직 제안을 받고 1주일 동안 잠을 못 잤다"며 "부담이 크기는 했지만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최종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GS칼텍스 구단은 조 감독을 영입하면서 벌써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2005년 출범한 여자 프로배구는 최근 크게 각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실업배구 시절보다 경기장에 팬도 많이 몰리지 않고, 관심도 덜하다. 이런 상황에서 조 감독이 지휘봉을 잡자마자 신문, 방송에 연이어 인터뷰가 나가는 등 그로 인해 오히려 시즌 때보다 여자배구가 더 큰 각광을 받고 있다.

조 감독은 "여자배구의 묘미는 아기자기한 조직력에서 나온다. 따라서 팀플레이가 위주가 되어야 하고 선수들끼리 서로 희생하며 상대를 살려주는 분위기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면이 있다"며 "내가 추구하는 것은 팀플레이를 위주로 한 재미있는 배구"라고 말했다.

그는 "물론 팀의 우승도 중요하지만, 팬들이 배구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하는 팀으로 만드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164㎝의 조 감독은 한창 선수로 활약하던 1970년대에도 배구선수로는 단신에 속했다. 요즘에는 볼 배급을 맡는 세터들도 170㎝는 넘는다. GS칼텍스 팀만 해도 레프트의 김민지는 187㎝이며, 센터 정은지와 정대영은 각각 186㎝, 183㎝로 장신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장신화 된 한국여자배구는 오히려 최근 국제무대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중국 일본은 물론 대만 태국에도 밀려 아시아에서도 중위권에서 헤매고 있는 것.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한국팀의 주포로 강타를 퍼부으며 동메달을 따내는데 앞장섰던 조 감독으로서는 이런 상황이 답답하지 않았을까.

조 감독은 "선수들을 직접 훈련시켜보니 체격은 물론, 체력이 놀랄 만큼 좋았다. 그런데 이런 좋은 체격과 체력을 배구 기술로 제대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이점만 보완되면 재목감이 많은 한국여자배구가 도약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키가 작았지만 러닝 점프력이 좋았고 공을 정점에서 강하게 때리는 기술이 남보다 뛰어나 주 공격수로 활약할 수 있었다"며 "나만의 이런 기술을 익히기 위해 팀 훈련 뒤에는 벽을 향해 혼자서 수 백 번씩 공을 때리는 훈련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요즘 선수들이 훈련보다는 몸치장하는데 더 신경 쓴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고, 팬들에게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주겠다는 프로 의식이 좀 부족한 것 같다"며 "무조선 강 훈련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왜 이런 훈련을 해야 하는가를 선수들 스스로 인식하게 하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목표 의식을 공유해야만 훈련 효과가 극대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혜정 감독 선수시절


초등학교 5학년 때 배구를 시작한 조 감독은 국세청, 대농을 거치며 선수 생활을 했고 1977년 국내무대 은퇴 후 이탈리아로 건너가 1979년부터 비코 코스모스팀에서 2년간 뛰었다.

조 감독은 "당시에는 이탈리아배구의 수준이 우리보다 낮아 내가 많은 활약을 할 수 있었다. 최하위였던 비코 코스모스팀을 4강에 올려놓은 게 이탈리아에서 이룬 업적"이라며 "이탈리아에서 비치발리볼에 눈을 떴고, 스파게티 요리법을 배운 것도 소득"이라며 웃었다.

조 감독이 이끌게 된 GS칼텍스 여자배구단은 앞으로 LG인화원 내 체육관에서 계속 훈련하면서 남자고교 팀이나 외국 팀을 초청해 연습 경기를 하면서 8월 열린 코보컵대회에 대비할 계획.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감독대행과 경북고 감독을 역임한 야구인 조창수(61) 씨와 1981년 결혼한 조 감독은 두 딸도 프로골퍼가 되면서 스포츠 가족이 됐다. 큰딸 조윤희(28)는 토마토상호저축은행 소속으로, 조윤지(19)는 캘러웨이 소속으로 여자프로골프에서 활약 중이다. 아버지 조창수 씨는 요즘 큰 딸의 캐디 겸 작은 딸 로드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다.

조 감독은 "나는 선수 생활 동안 우승만 하고 살았다. 그런데 두 딸을 골프 선수로 키워보니 우승은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무슨 일이든 몰입해서 적극적으로 하다보면 성적은 따라오는 것인 만큼 최초의 여자 프로 감독이라는 명예에 흠이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백명선, 유경화, 변경자, 윤영내, 정순옥….' 중년의 배구 팬들이라면 알고 있을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 획득의 주역들이다.

이중 한명이었던 조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코트에 복귀했다. '나는 작은 새' 조혜정. 그가 다시 한번 여자배구 중흥의 바람을 일으키기를 기대해 본다.

이천=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