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소, 아프리카에 바이러스 대량살포여행-무역이 역병 부채질… 인류의 삶 위협
교통수단의 발달, 사람과 물자의 빈번한 이동으로 바이러스와 세균의 전파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전파 장소도 지구촌 구석구석으로 확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바이러스와 세균을‘생물학적 시한폭탄’이라고 우려한다.
◇대혼란/앤드류 니키포록 지음·이희수 옮김/448쪽·1만8000원·알마
1887년 이탈리아는 아비시니아(지금의 에티오피아)를 점령한 군인들에게 식량을 보급하기 위해 인도에서 소를 수입했다. 그 무리 가운데 우역(rinderpest·‘뿔 있는 소의 전염병’이라는 뜻)에 감염된 소가 있었던 것이 아프리카 불행의 시작이었다. 인간 홍역의 친척쯤 되는 이 바이러스는 고열과 잇몸 궤양을 유발했고 12일 뒤에 설사를 일으켜 동물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소의 죽음으로 목초지가 관목지대로 바뀌면서 2차 피해도 일어났다. 관목지대를 좋아하는 흡혈곤충 체체파리가 창궐하면서 1900∼1906년 20만 명의 동아프리카인이 수면병으로 사망했다. 새 바이러스가 소와 야생 물소를 전부 해치우자 굶주린 사자들은 인간을 공격했다. 어떤 사자는 사람을 84명이나 해쳤다. 우역은 동아프리카의 동식물 분포와 역사까지 바꿨다.
생물학적 침입자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았다. 2001년 영국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그렇다. 북잉글랜드의 한 지저분한 양돈농장에서 시작된 구제역으로 인해 영국은 1만여 농장에서 1000만 마리가 넘는 양과 돼지, 소 등을 죽였다. 이 중 실제로 구제역에 걸린 동물은 10%도 되지 않는다. 제때 처리하지 못한 양과 소의 시체를 농장 곳곳에서 태우느라 죽음의 검은 그림자가 영국 농촌을 뒤덮었다.
전문가들은 영국의 구제역 사례에서 인간이 새로운 침입자에 얼마나 취약한지 읽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구제역 자체는 치사율이 높지 않지만 국제무역에 필요한 구제역 청정지역이라는 위상, 대규모 사육에 따른 높은 전염성 때문에 대량 살상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조류 인플루엔자와 구제역뿐만 아니라 곰팡이와 탄저균, 콜레라, 광우병 등 인류를 위협하는 침입자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고 경고한다. 새로운 침입자들은 이른바 ‘종의 저글링’이라 불리는 무자비한 확산을 통해 다른 종의 생존을 허락하지 않는 양상을 보인다고 강조한다.
가축 전염이 인간 전염병으로 번질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지만 그에 대한 뚜렷한 대책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저자는 우려한다. 전문가들은 유행병이 번질 때 일상생활에서 손을 자주 씻고 재채기를 손수건으로 가리고 하라는 정도의 대안만을 내놓을 뿐이다. 새로운 생물학적 침입자 앞에 놓인 불안정한 환경에 대해 저자는 역사학자인 앨프리드 크로스비 주니어의 말을 빌려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 모두는 병든 세상과 나란히 거대하고 혼잡한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다.” 세상은 저절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곳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된다. 원제 ‘Pandemonium’(2006년).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