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면 차고… 차면 기우니…마음속에 달을 띄워볼까
덕수궁미술관의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전은 시간이란 주제와 미술을 연결시킨 전시다. 백남준의 영상작품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오른쪽)와 강익중의 ‘365달항아리’(왼쪽)가 마주 보는 전시장은 끝없이 이어지고 순환하는 시간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그 맞은편 벽면을 365개의 나무 패널에 달항아리를 그린 설치작품이 채우고 있다. 365일을 상징하는 나무 판의 길이는 제각각이다. 똑같은 하루지만 매일매일이 다르게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을 떠올리게 한다. (강익중의 ‘365달항아리’)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7월 4일까지 열리는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전은 ‘시간성’을 열쇳말로 풀어낸 전시다. 자연의 시간을 상징하는 ‘달’을 중심에 두고 ‘강’ ‘물’ ‘끈’ 등 4개 섹션으로 이어진 전시 구성은 차분하고 담백해서 돋보인다. 존배 김홍주 도윤희 함연주 씨 등 작가 11명의 작품은 넉넉한 여백을 두고 관람객과 만난다. 이곳에서 처음 선보이는 현대적 매체의 뉴미디어와 설치 작품은 고풍스러운 공간과 어우러지며 묘한 매력을 발휘한다. 속도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는 명상적 전시다. 02-2022-0600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해보다 달이 친밀한 존재였다. 달을 보며 절기 변화를 짐작하고, 달을 방 안에 들이기 위해 달항아리를 만들고, 달을 향해 소원을 빌었다. 달과 멀어진 현대인에게 감각의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두 전시. 마음의 각질을 벗겨 내는 데 유효하다.
○ 달과 시간에 대한 명상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 임충섭 씨의 설치작품 ‘월인천강’. 동양적 감수성의 원천을 ‘달’에서 찾으려는 작업이다. 사진 제공 학고재 갤러리
한은선 씨의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는 푸른색 먹물의 번짐과 스밈이 만든 이미지를 통해 시간도 물도 흐르는 것임을 기억하게 한다. 이진준 씨의 영상작품 ‘불면증’은 잠 못 이룬 날 아침, 창문에 내린 블라인드를 통해 스며드는 햇살과 미풍으로 시간의 존재를 실감나게 한다. 신미경 씨는 비누 조각으로 소멸되는 시간을 드러낸다.
○ 달과 여백에 대한 사유
“서구 세계에서는 달보다 해가 더 큰 영향력을 지녀왔던 터라 달이 갖는 동양의 시적 개념을 취해 그것을 현대적 언어로 풀어보고 싶었다. 내게는 달빛이 연상시키는 단색적 사고 개념이 해보다 더 진한 여백의 개념으로 이끈다.”(작가노트)
뉴욕에 살면서 작업하는 임충섭 씨는 문명과 자연 사이에서 여백을 찾고자 한다. ‘월인천강’, ‘월인천지’ 등 설치작품은 하늘과 지상의 다리를 놓기 위한 작품이다. ‘하늘의 달뿐 아니라 강물에 비친 달도 달’로 파악했던 퇴계의 철학을 미학적으로 풀어낸 작업이다. 서구의 이분법적 사고와 달리 실재와 허상이 하나라는 것은 달을 바라보는 ‘마음’에 비중을 둔 시각이다.
달이 기울고 다시 차오르는 모습에서 “해님은 달님의 여백이요, 달님은 해님의 여백”임을 읽어내는 작가. 논리적 사유와 실험정신이 담긴 작품에도 정서적 울림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