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정무 감독의 남다른 월드컵 각오“과거엔 너무 긴장해 경기를 제대로 못했다… 지금은 다르다, 더는 어이없이 당하지 않겠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박지성(29·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왼쪽)과 이청용(22·볼턴)이 다음 달 11일 개막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출전할 축구대표팀에 합류하기 위해 11일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했다. 이들은 열띤 취재 공세에 휩싸이며 고조되고 있는 월드컵의 열기를 실감했다. 인천=박영대 기자
성적 부진으로 불명예 퇴진
국내파 사령탑 명예회복 선언
축구선수에게 월드컵은 꿈의 무대다. 코칭스태프에게도 마찬가지다. 어떤 감독이든 최고의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어 한다.
특히 허정무 대표팀 감독(57·사진)은 이번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대한 각오가 남다르다. 1998년 올림픽 및 국가대표팀 감독에 올라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그해 아시안컵에서 성적이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밀려난 뒤 다시 사령탑에 올라 처음 도전하는 월드컵이다. 공교롭게도 허 감독 이후 2001년 초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 감독이 부임한 뒤 조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까지 줄곧 외국인이 한국축구를 쥐고 흔들었다. 히딩크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16강을 넘어 아시아 최초로 4강까지 끌어올렸다. 2007년 말 베어벡 감독이 떠난 뒤 다시 국내파로 지휘봉이 돌아오며 허 감독이 맡았으니 그로선 “역시 국내파는 안 돼”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총력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7회 연속 본선 진출을 이뤘지만 본선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란 새 역사를 창조해야만 하는 이유다.
요즘 허 감독은 인자한 이웃집 아저씨같이 느껴진다. 훈련할 때나 식사할 때나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다. 선수들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 지적은 하지만 절대 몰아치진 않는다. 그리고 칭찬도 많아졌다. 하지만 선수는 철저하게 실력으로 평가한다. 외국인 감독들이 했듯 학연, 지연, 인맥을 철저하게 무시한 채 선수를 선발하고 기용한다.
허 감독은 이번 월드컵이 시련의 끝이길 바란다. 그는 2000년 대표팀에서 떠난 뒤 5년 가까이 ‘야인’으로 보냈다. 용인축구센터를 맡아 유망주를 키우는 일은 했지만 프로와 대표급에서는 잊혀질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2004년에는 본프레레 감독 밑에서 수석코치를 하며 숨죽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시련의 시기가 그를 강하게 만들었다. 2005년 전남 드래곤즈 감독에 복귀한 뒤 FA컵을 2회 연속 우승했다. 그 지도력을 발판으로 태극호를 다시 맡게 됐다.
허 감독은 마지막 소집훈련을 시작하는 10일 예비 엔트리 30명 중 11명만이 왔지만 여유를 잃지 않았다. “어차피 현실을 인정하고 미래를 봐야지 현재의 안 좋은 모습에 너무 집착하면 앞이 보이지 않는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느긋해했다.
지도자로 험난한 길을 걸어온 허 감독. 이번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활짝 웃을 수 있을까.
◆ 허정무 감독은
○ 선수 경력
△포지션=미드필더, 공격수
△소속팀=영등포공고-연세대-한국전력-해군-PSV 에인트호번(1980∼83년)-울산 현대 호랑이(1984∼86년)
△대표 경력=청소년 대표(1973∼74년), 국가대표(1974∼86년)
△A매치 통산 성적=87경기 30득점
△주요 참가 국제대회=1973년 아시아 청소년대회, 1978년 방콕 아시아경기(우승), 1984년 아시안컵, 1986년 멕시코 월드컵,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우승)
△PSV 에인트호번 기록=네덜란드 1부 리그 77경기 11득점(1980∼83년), 네덜란드 FA컵 8경기 1득점, 유럽 클럽컵 8경기 1득점(UEFA컵)
○ 지도자 경력
△국가대표팀=코치(1991년, 1993∼94년, 2004∼2005년), 감독(1995년, 1998∼2000년, 2007년∼)
△프로팀=포항 아톰즈(현 포항 스틸러스) 코치(1991∼92년), 포항 아톰즈 감독(1993∼95년), 국가대표팀 감독(1995년·브라질 평가전), 전남 드래곤즈 감독(1996∼98년, 2005∼200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