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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진영]인터넷 대중지성 유감

입력 | 2010-05-12 03:00:00


“백령도 앞바다에는 암초가 많아 파도가 빠르다. 철사를 자를 때 구부렸다 폈다 하는 원리처럼 파도의 힘에 의해 천안함이….”(네이버 지식인)

“함정에 위치한 밸브가 훼손됐거나 또 다른 원인으로 침수가 급히 진행됐을 수도….”(다음 블로거뉴스)

천안함 침몰 원인을 놓고 포털 사이트에서는 누리꾼들의 백가쟁명이 한창이다. 네이버의 ‘지식인’에는 침몰 원인을 묻고 답하는 글들이 줄줄이 올라와 있다. 블로거들은 “해군에 있어봐서 아는데” “잠수 많이 해봐서 아는데” 하고 경력을 앞세워 그래픽까지 곁들여가며 독창적인 해석을 제시한다. 심지어 “4대강 사업 때문에 국방 예산이 부족했다” “담뱃불에 의한 사고다” 등 어느 누리꾼의 표현대로 천안함 ‘백일장’이라도 열린 듯한 분위기다.

천안함 침몰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려는 이러한 움직임은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해가며 답을 찾아가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활동방식이다. 집단지성은 정보사회에서 각광받는 개념으로 하찮은 개인의 지혜가 모이면 전문가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2004년 236년 전통의 브리태니커를 압도한 위키피디아의 성공이 집단지성의 힘을 상징한다.

하지만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집단지성을 ‘대중지성’과 ‘전문가지성’으로 나누어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흔히들 얘기하는 집단지성은 ‘대중’의 집단적 지혜를 뜻하는 대중지성에 가까운 개념이라는 것이다. 대중이 생산하는 지식은 개별적인 체험에 근거해 실용성은 높지만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따라서 국가전략과 같은 거시적인 분야의 지식은 이론화를 거친 전문가의 지성에 의존해야 한다. 집단지성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레비도 전문가지성 중심의 집단지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인터넷 강국인 한국은 일찍이 대중지성과 전문가지성의 힘을 모두 경험했다. 초등학교의 부실한 급식 실태, 독립군의 자손이라고 자랑하던 국회의원 부친의 친일경력 등은 대중의 개별적인 체험이나 목격담이 모여 진실을 밝혀낸 사례이다. 그러나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 의혹을 검증해낸 주체는 ‘브릭스’라는 생명과학도들의 집단지성이었다.

그런데 대중지성을 경계하는 이유는 전문성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최 교수는 “대중지성은 검증되지 않은 정보의 생산과 유통, 쏠림현상, 감성적이라는 특성을 보임으로써 집단적 우중화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이는 대중이 앞 다퉈 퍼뜨린 비과학적인 정보들이 일으키고, 이 와중에 몰매를 맞을까 봐 침묵했던 전문가지성이 증폭시킨 2년 전의 광우병 파동 때 아프게 경험했던 사실이다. 집단지성의 총아 위키피디아도 지난해부터 정보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중의 편집권을 제한하고 있다.

천안함 침몰 원인 규명은 해군에 있어 본 사람이나 잠수를 많이 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경험의 차원을 넘어선다. ‘정치포털 대표’라는 신분으로 방송에 나와 “모래톱에 의한 좌초와 미군 것으로 추측되는 함선과의 충돌이 연계돼 발생한 해난사고”라고 주장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광우병 파동 때도 천안함 침몰 때도 정부의 미숙함이 사태를 키웠지만, 그래도 1200t급 초계함의 침몰 원인을 맛집 정보 묻고 답하듯 하는 것은 집단지성이 아니라 ‘집단야만’이다.

이진영 인터넷뉴스팀 차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