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 거주지 체형… 나라 가르는 벽
한국은 빈부, 출신지, 학력, 가문, 체형, 거주지 등에 대한 차별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일에 익숙한 사회이며 이로 인한 갈등이 끊이질 않는다. 독특한 존비(尊卑)어 체계가 차별의 일상화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밥이라는 것이 나라에 오르면 수라요, 양반이 잡수시면 진지요, 하인이 먹으면 입시요, 제배(제輩)가 먹으면 밥이요, 제사에는 진메”란 흥부전의 한 대목은 신분에 따른 언어 차별을 짐작하게 한다. 한국항공대 최봉영 교수는 다른 나라에도 상하 호칭은 있지만 문장 전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아 대등한 관계 형성이 한국에 비해 쉽다고 말한다.
글로벌 경영에 나선 국가는 무력뿐만 아니라 관용도 있었기에 성공했다는 걸 역사가 보여준다. 페르시아 로마 당 몽골 스페인 영국 등 초강대국은 인종 종교 배경과 상관없이 능력과 지혜를 갖춘 인재를 끌어들여 번영을 이뤘다. 시오노 나나미 씨는 ‘로마인 이야기’를 완간한 뒤 “내가 호소하고 싶은 것은 공생이다. 먼 옛날 피부색도, 민족도, 종교도 다른 사람들이 공존공생하며 살았던 로마란 제국이 있었다고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들 국가는 관용을 잃었을 때 제국을 유지할 힘도 잃었다.
피부색 같아도 이방인 되는 새터민
한국에는 얼굴도 피부색도 같지만 차별받는 집단이 있다. 탈북자가 바로 그들이다. 최근 탈북자로 위장한 황장엽 씨 암살 공작조가 붙잡히자 탈북자들은 차가운 시선을 느껴야 했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란 정황이 뚜렷해지고 주적 개념이 부활하면 이들의 가슴은 더욱 오그라들 것이다. 대다수 탈북자는 북한 정권의 피해자다. 이들이나 북한 주민이 우리의 주적일 수는 없다. 김정일을 필두로 한 북한 지배층과 군부, 이에 기생하는 세력이 주적이어야 한다.
탈북자는 상상하기 힘든 고초를 겪고 남한에서 살길을 찾으려고 바동거리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이들을 껴안아야 한다. 탈북자에 대한 관용과 관심은 통일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일부 단체는 탈북자를 북한 민주화와 자유화의 리더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남한 사회의 소중한 자원이기도 하다. 북한이 연관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면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탈북자를 죄인 취급하는 소아병적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