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오늘과 내일/하준우]자멸을 부르는 차별

입력 | 2010-05-12 03:00:00


2005년 여름 스코틀랜드 고도(古都)인 스털링 시 스털링대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한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흘러내린 뱃살이 사타구니를 덮었다. 자신의 발끝을 보지 못한다는 표현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그 남자를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멋쩍어서 고개를 돌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씁쓸했다. 비만 체형을 뚫어지게 바라본 시선이 부끄러웠다. 세상에는 갈비씨도 있고 뚱뚱이도 있다. 사람의 체형에 차이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개별적인 차이가 구경이나 경멸의 대상이 되는 건 당사자에겐 모욕이자 차별일 터이다.

빈부 거주지 체형… 나라 가르는 벽

한국은 빈부, 출신지, 학력, 가문, 체형, 거주지 등에 대한 차별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일에 익숙한 사회이며 이로 인한 갈등이 끊이질 않는다. 독특한 존비(尊卑)어 체계가 차별의 일상화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밥이라는 것이 나라에 오르면 수라요, 양반이 잡수시면 진지요, 하인이 먹으면 입시요, 제배(제輩)가 먹으면 밥이요, 제사에는 진메”란 흥부전의 한 대목은 신분에 따른 언어 차별을 짐작하게 한다. 한국항공대 최봉영 교수는 다른 나라에도 상하 호칭은 있지만 문장 전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아 대등한 관계 형성이 한국에 비해 쉽다고 말한다.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언어체계야 어찌됐든 관용과 공존은 이 시대의 강령이다. 세계 각국에 공장과 사무실을 두고 있는 기업뿐만 아니라 이미 다문화 세례를 받고 있는 일반인도 글로벌 사회에 편입된 지 오래다. 다른 인종과 세력을 관용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회원국 가운데 네 번째로 사회갈등이 심한 나라다. 사회갈등지수를 10% 낮추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7.1% 높아진다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차별과 이로 인한 갈등은 자멸을 부추기는 사회문제다.

글로벌 경영에 나선 국가는 무력뿐만 아니라 관용도 있었기에 성공했다는 걸 역사가 보여준다. 페르시아 로마 당 몽골 스페인 영국 등 초강대국은 인종 종교 배경과 상관없이 능력과 지혜를 갖춘 인재를 끌어들여 번영을 이뤘다. 시오노 나나미 씨는 ‘로마인 이야기’를 완간한 뒤 “내가 호소하고 싶은 것은 공생이다. 먼 옛날 피부색도, 민족도, 종교도 다른 사람들이 공존공생하며 살았던 로마란 제국이 있었다고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들 국가는 관용을 잃었을 때 제국을 유지할 힘도 잃었다.

피부색 같아도 이방인 되는 새터민

한국에는 얼굴도 피부색도 같지만 차별받는 집단이 있다. 탈북자가 바로 그들이다. 최근 탈북자로 위장한 황장엽 씨 암살 공작조가 붙잡히자 탈북자들은 차가운 시선을 느껴야 했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란 정황이 뚜렷해지고 주적 개념이 부활하면 이들의 가슴은 더욱 오그라들 것이다. 대다수 탈북자는 북한 정권의 피해자다. 이들이나 북한 주민이 우리의 주적일 수는 없다. 김정일을 필두로 한 북한 지배층과 군부, 이에 기생하는 세력이 주적이어야 한다.

탈북자는 상상하기 힘든 고초를 겪고 남한에서 살길을 찾으려고 바동거리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이들을 껴안아야 한다. 탈북자에 대한 관용과 관심은 통일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일부 단체는 탈북자를 북한 민주화와 자유화의 리더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남한 사회의 소중한 자원이기도 하다. 북한이 연관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면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탈북자를 죄인 취급하는 소아병적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하준우 편집국 부국장 ha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