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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전재성]천안함, 이제부턴 외교전이다

입력 | 2010-05-12 03:00:00


천안함 침몰의 원인 규명과 사후 조치, 북핵 문제와의 연계 등 주요 문제가 외교전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에 대해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고 사후 조치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면서 향후 북한 문제 해결 과정에서 주도권을 획득하려면 성공적으로 넘어야 할 중요한 고비다.

한국에 가장 확고한 외교적 지원국은 미국이다. 중국의 부상과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동아시아의 새판 짜기를 목도하는 미국에 동맹국과의 순조로운 관계는 핵심 전략이다. 하토야마 유키오 정부 등장 이후 미일관계가 흔들리고 지역주의 구상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한국과의 관계는 개별 이슈 각각에 관계없이 지켜내야 할 동아시아 정책의 한 축이다. 미국은 천안함 침몰의 원인 조사와 사후 조치에서 한국의 견해를 최대한 지지할 것이다.

문제는 북핵을 폐기해야 체면이 서는 미국의 지구적 핵전략이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지고 ‘단호한’ 대북 조치 국면이 벌어진다면 미국은 우선 동참하겠지만 6자회담이 마냥 소강상태에 빠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무정책으로 비판받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천안함 이후의 국면을 한국이 이끌어주기를 바랄 것이다.

화평발전을 위해 한반도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중국 역시 북한발 딜레마를 절감하고 있다. 경제 불안과 부자세습을 눈앞에 두고 중국에 목을 매면서도 각종 도발로 중국의 ‘책임 있는 강대국’ 체면을 손상시키는 북한이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번 북-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북한의 부자세습을 인정하고 경제지원을 약속했다.

중국은 그 대가로 북한의 대내외적 결정에 전략적 소통이라는 명분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요구를 명백히 했다. 개혁개방의 길도 더 강하게 권고했다. 북한으로부터 6자회담으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지는 못했지만 향후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제어할 발판을 마련하려 했다.

남북 협력 가능성을 유보하고 대미 관계 개선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중국은 북한에 마지막 보루이다. 내정과 경제발전 노선에 대한 개입으로 여겨질 수 있는 후진타오 주석의 발언을 들으면서도 김정은 체제의 발판을 마련해야 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이번 중국 방문은 절박했을 것이다. 6자회담에 다시 발을 들여놓는 순간 핵폐기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을 북한은 잘 안다. 핵 없는 북한을 아들 김정은이 순조롭게 이끌어나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6자회담 복귀 약속을 하기도 난감했을 것이다. 유리한 협상이 필요할 때마다 그에 준하는 도발로 협상고지를 마련하고자 했던 북한에 천안함 침몰의 득실계산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현재의 외교전에서 한국은 제2의 천안함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사용 가능한 모든 외교적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군사적 요소를 외교노력과 결합할 방안도 찾아야 한다. 강력한 외교를 끈질기게 전개하여 원인 제공자가 자신의 소행을 깊게 후회하고, 또 다른 사태를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문제는 ‘단호한’ 조치 이후에 대한 한국의 마스터플랜이다. 북한은 더 큰 ‘제재의 모자’를 쓰게 된다면 6자회담을 통해 핵을 순순히 폐기하기가 더욱 어렵다. 천안함 국면 속에서 미국도 마냥 기다려주지 않고 중국은 격앙되어 보이는 한국의 조치에 최소한의 지지만 보낼 가능성이 높다. 주변국의 전략적 계산이 천안함 이후 국면에 이른 지금 우리의 장기 전략이 주변국을 설득하는 요체가 될 것이다. 주변국의 이해를 고려한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한반도 전략을 제시해야만 현재의 외교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전재성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