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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뮤직] 가슴에 문신 새긴 리아나, 왜?

입력 | 2010-05-12 14:56:22


'절대 실패는 없다. 항상 교훈만 있을 뿐이다'는 문구를 가슴에 새긴 리아나. 출처=OK 매거진 ☞ 사진 더 보기


섬나라 바베이도스 군대의 사관생도였던 시절이 그립기라도 했던 걸까. 173cm 큰 키가 뿜어내는 당당한 위용에 머리카락까지 모히칸(정수리 부근 모발을 좁게 남기고 나머지를 짧게 하는 스타일)식으로 잘랐다. 어릴 적 별명(thunder thighs·번개 허벅지)처럼 튼실한 허벅지는 치명적인 무기처럼 보인다.

지난해 말 발표한 앨범 '레이티드 R(Rated R)'에서다. 이 앨범에서 리아나(22·Robyn Rihanna Fenty)는 섹시함을 버리진 않았지만, 섹시함만 고수하지도 않았다. 풋풋했던 바베이도스 섬나라 소녀는 이제 섹시함을 넘어서 카리스마를 얻었다.

가수가 자신의 속내를 가사에 드러내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자칫 촌스러워 보일 수 있고, 그 노래를 반복해서 불러야하는 일도 가수에겐 고역이다. 그러나 리아나는 달랐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변해도 되는지 싶을 만큼 거침없다.

"엄브렐라(Umbrella) 렐라 렐라~"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사랑하는 이에게 심장을 나눠가지자'(Umbrella)고 했던 그는 어느 새 '루드 보이(Rude Boy)'에서 '자신을 거칠게 다뤄달라'는 강한 여성이 됐다. 그뿐인가. 목숨을 거는 위험한 게임인 '러시안 룰렛(Russian Roulete)'을 하며 '이 게임을 통과하려면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고 말하고, '바보 같은 사랑'도 다시는 하지 않겠다(Stupid in love)고 다짐한다.

■ 바베이도스 섬 소녀, 가수가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전 남자친구였던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리아나는 지난해 그래미상 시상식을 앞두고 브라운에게 폭행을 당했다. 경찰 문서에 따르면 차에서 리아나를 끌어당기던 브라운은 그녀의 귀를 물어뜯었고 계속해서 얼굴을 때렸다. 그리고 경찰에 제출한 폭행 직후 사진은 언론에 여과 없이 노출됐다.

소송도 모자라, 복수 한다고 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럼에도 리아나는 크리스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했다. 호텔에서 찍은 누드사진이 유출됐을 때는 얼마 뒤 남성잡지 GQ에 표지 에 등장해 파격적인 세미 누드를 선보였다. 착한 건지 뻔뻔한 건지, 그것도 아니면 생각이 없는 건지 모두들 의아해했다. 하지만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리아나는 바베이도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바베이도스는 카리브 해에 있는 조그만 섬나라. 가이아나인 엄마와 바베이도스인과 아일랜드인의 피가 섞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코카인 중독자인 아버지는 리아나가 14살 때 엄마와 이혼했다. 학교에서는 피부색이 흑인들에 비해 조금 밝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너무 당황스러웠던 기억"이라며 "친구들에게 초등학교 졸업식 날까지 따돌림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인생 역전의 기회가 찾아온 건 2003년, 열다섯 살 때였다. 미인대회에 출전해 상도 탔고 친구들과 뮤지컬 팀도 짜며 가수의 꿈을 키울 때였다. 마침 바베이도스에 휴가를 왔던 작곡가 에반 로저스는 진흙 속 진주였던 리아나를 발견한다.

■ 단단한 그녀, 강한 여자로 태어나다.

리아나가 가수로 고유의 색을 내기 시작한 3집 ‘굿 걸 곤 배드’의 앨범 자켓 이미지. 유니버셜 뮤직 사진제공 ☞ 사진 더 보기


제이지, 데프잼 등 최고 프로듀서들의 도움으로 그는 대형 신인이 됐다. 데뷔 초 말랑말랑한 느낌 때문에 '풍선껌 여왕(bubblegum queen)'이라고 불리던 그는 '댄스홀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쉬운 건 없었다. 과정은 늘 순탄치 않았다.

출신이 섬나라 바베이도스라는 이유로 리아나 음악은 레게 장르로 취급됐고 평론가들은 엇갈린 평을 내렸다. 롤링스톤지는 "다시 들을 가치가 없다"며 "딸꾹질 하는 목소리에 겉치레 가득한 보컬"이라 혹평했다. 프로듀서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는 '비욘세의 복사판'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몸매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가죽 옷을 입고 나왔을 땐 '재닛 잭슨의 짝퉁'이라고 욕을 먹었다.

하지만 3집 '굿 걸 곤 배드(Good Girl Gone Bad)'부터 리아나는 신출내기 스타의 풋풋함과 거리를 둔 채 과감한 노출을 통해 변신을 꾀한다. 여기에 3번의 그래미상 수상, 갖은 우여곡절과 산전수전, 좌충우돌이 겹쳐지며 그는 자신에게 고유의 색깔을 입히기 시작한다.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 비욘세 뇰스 등 선배 가수들을 우러러 보며 자랐던 리아나는 이제 동료 가수에게 싸움을 걸기 시작했다. 경쟁자인 레이디 가가를 향해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가가의 '텔레폰' 뮤직비디오가 지나치게 간접광고를 많이 한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또 최근에는 새로운 남자친구와 당당히 열애 사실을 인정할 만큼 여유도 생겼다. (그는 새 남자친구인 미국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소속 매트 켐프 선수와 열애사실을 인정했으며 결혼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 가슴에 문신을 새기며, 리아나는 변했다

지난해 그래미상 시상식을 앞두고 남자친구인 브라운에게 폭행을 당한 리아나. 경찰에 제출한 폭행 직후 사진은 TMZ.com 등 언론에 보도됐다. 출처=TMZ.com ☞ 사진 더 보기


'폭행당한 여자'라는 주홍글씨를 제 손으로 지우려는 것일까. 온몸 구석구석에 문신을 새긴 것으로 유명한 리아나의 몸에는 현재 총 13개의 문신이 그려져 있다. 발목에는 음표가, 오른쪽 귀에는 물고기자리 그림이, 왼쪽 귀에는 별 그림이, 엉덩이에는 산스크리트어로 된 기원문이, 가운데 손가락에는 사랑(love)이라는 단어가 새겨져있다. 그리고 지난 해 겨울, 이런 문구를 가슴에 새겼다. "절대 실패는 없다. 항상 교훈만 있을 뿐이다(Never a failure, always a lesson)" 게다가 매일 거울을 보며 읽기 쉽게 글자를 거꾸로 썼다고 한다.

4월 중순부터 열리고 있는 세 번째 투어 이름(the last girl on earth)은 이런 자신감의 또 다른 표현이다. "나는 지구상에서 최후의 여자가 되고 싶다"는 그는 다른 사람의 잣대와 평가를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자신의 기준에 따라서만 살겠다고 선포했다. '내 인생은 내 인생일 뿐'이라는 그녀에게 이제 서야 옹골찬 자신감이 비치는 것 같다. 역시 고통은 인간을 성숙시키는 법. 그녀가 지구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최후의 디바가 되길 바란다.

염희진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