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예술은 좀 더 미묘한 방식으로 만나기도 한다. 과학연구는 흔히 확실한 경험적 증거에 기반을 두고 빈틈없는 논리로 확고한 결론을 이끌어낸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과학관에 잘 어울리는 개념이 ‘결정적 실험’이다. 만약 경쟁하는 두 이론이 서로 다른 현상을 예측한다면 실험을 통해 두 이론 중 어느 것이 맞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결정적 실험의 유명한 예로 아라고의 실험이 있다. 뉴턴은 빛이 입자라고 주장했고 프레넬은 파동이라고 주장했다. 이 상황에서 뉴턴 이론에 호의적이었던 푸아송은 프레넬 이론이 맞는다면 동그란 원판의 그림자 한가운데 밝은 점이 나타나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푸아송의 기대와 달리 이 기이한 현상은 아라고의 실험에 의해 실제로 관찰됐고 결국 빛이 파동이라는 프레넬의 이론이 승리한다. 이처럼 결정적 실험을 통해 이론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내리는 과학연구와 예술가마다 다를 수 있는 미적 감각에 호소하는 예술은 사뭇 달라 보인다.
이 같은 상황은 과학연구에서 흔하게 일어난다. 당대 최고의 천문관측자 튀코 브라헤는 코페르니쿠스 이론이 옳다면 별의 위치가 여름과 겨울에 달라져야 한다고 올바르게 추론하고 이 차이를 관측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대부분의 천문학자는 코페르니쿠스 이론을 종교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브라헤의 관측결과와 어긋났기에 불만족스럽게 생각했다. 물론 계절에 따른 별의 위치 차이는 존재한다. 너무 작아 당시 관측기술로는 발견할 수 없었을 따름이다.
과학자는 연구과정에서 끊임없이 어려운 판단을 해야 한다. 이 실험결과를 믿을 수 있을까, 실험장치 설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실험결과와 이론이 일치하지 않는 이유가 실험이나 이론 말고 다른 데 있지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 똑같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 사이에 의견이 갈릴 수 있다. 대부분의 논쟁은 후속 연구를 통해 해결되겠지만 다음엔 또 다른 논쟁이 기다린다.
결국 일상적인 과학연구에서 개별 연구자는 실험 이론 자료 기구 등 다양한 현상 사이의 일치와 불일치를 설명하고 다음 연구를 어떻게 진행시킬지에 대한 끊임없는 판단에 직면한다. 여기에 과학연구의 예술적 성격이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다양한 판단의 폭을 합리적으로, 하지만 이견의 여지를 남긴 채 좁혀 나가는 과정에서 과학연구자들은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발휘한다.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