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격침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단정할 만한 직접적 증거는 없다. 하지만 불행히도 천안함이 어뢰에 피격당했다는 과학적 증거는 충분하며 모든 정황으로 볼 때 강성국가를 자처하며 남측에 대한 보복의지를 거침없이 드러낸 북한 이외에 그 용서 못할 행위의 주체로 지목받을 만한 다른 대상이 없다.
천안함 사건 전에도 북핵 문제가 이미 우리뿐 아니라 온 세계의 걱정거리였고 우리에게는 핵 문제 발생 전부터도 북한은 포용해야 할 불쌍한 동족인 동시에 가장 경계해야 할 ‘주적’이었다. 다만 지난 정권들이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하면서 좌파 문화권력은 북한의 실상을 정확하게 알리는 일조차 냉전적 사고니 색깔 논쟁이니 하면서 마치 반민족적 행위인 양 몰아붙이며 북한에 대한 경계의식을 마비시켰기 때문에 이번 참사에도 격렬하게 분노가 표출되지 못하는 것뿐이다.
10년 대북 포용정책의 성적표
2000년 정상회담 이래 우리가 추구한 북한 포용정책의 결산은 과연 무엇인가. 러시아와 유럽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나서 우리와 북한은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고 남북한 기본합의서를 채택함으로써 평화공존을 하다가 강대 이웃과의 공조 속에서 평화적 통일로 들어서는 길이 현실적으로 열리는 듯했다. 그 후 얼마 지나서는 북한 체제의 붕괴로 남쪽 중심의 흡수통일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북에 대한 남의 우위는 거의 절대적이었고 드디어 우리는 북한의 위협을 의식하지 않고 살게 된 듯했다.
하지만 남을 탓하는 일은 과거나 지금이나 부질없다. 필요한 것은 착각이나 잘못을 반성하고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일이다. 우리가 남북 정상회담으로 들떠 있었을 때에도 외국의 북한전문가들은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로 회생해서 자립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우선은 후의를 베풀어 적대감을 해소하고 신뢰를 구축하며 북한을 지원하여 자립하도록 돕는 일이 흡수통일보다 나은 길이라는 생각은 같은 민족으로서 충분히 해볼 만했다. 하지만 상호 신뢰 구축을 통한 평화로운 관계 수립이란 목표는 처음부터 빗나갔다. 남북 간에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안에서도 대북 포용정책은 처음부터 진실성이 결여된 동상이몽의 야합이었지 남북동포가 다 같이 잘되어야 한다는 고매한 이상주의와 투철한 현실인식에 바탕을 둔 합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6·15선언의 핵심으로 내세워지곤 하는 제2조, 곧 북한의 고려연방제안의 낮은 단계와 남한의 통일방안이 공통점을 가진다는 선언은 국가권력의 작동원리에 대한 완전 무지나 위선에 기초한 것으로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을 아름다운 포장으로 감싸주는 결과밖에 안 됐다.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 때 북측 대표로 온 사람은 대한민국을 배반하고 월북한 사람 가운데 최고위직 출신인 최덕신 전 외무장관의 처로 천도교 청우당 위원장이던 유민영이었다. 황장엽 선생을 우리 측 이산가족 대표로 보내는 일과 다름없는 행위를 정부와 국민이 묵인함으로써 대북 포용정책은 초기부터 북측의 의도대로 놀아날 것임을 예약했던 셈이다.
현실 못 깨달으면 희생 헛돼
햇볕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 동상이몽의 야합이었다. 진정한 친북세력은 그것이 흔들리는 북한 체제를 살려내는 길이라서 적극 밀었던 반면 남측 기득권은 흡수통일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통일 방안이라는 얄팍한 오산에서 환영했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환상과 위선과 무지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기 시작했다.
이인호 KAIST 김보정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