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소비하는 뉴욕, 그리고
당신이 모르는 NEW YORK
'너 자신의 뉴욕을 소유하라'의 저자 탁선호
● 한국을 휩쓴 뉴욕열풍, 과연 우리는 뉴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 웰컴 투 더 리얼 뉴욕-사회적 책임이 사라진 멋진 신세계
맨해튼의 한 공원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한결이가 '여기가 소호보다 낫지?'라고 묻는 장면은 실제 한국이 뉴욕보다 나음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부유한 청년조차도 한국에서의 삶에서 어떤 미학적 결핍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본문 '너 자신의 소호를 소유하라' 가운데
지난해 말 한국의 모기업이 이끄는 컨소시엄이 맨해튼 남부에 있는 66층짜리 AIG 본사 건물을 매입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언론은 "한국기업 드디어 미국 맨해튼에 태극기를 꽂았다"고 보도하며 환호했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한국인에게 성공의 중대한 기준점이 된다. 똑같은 햄버거를 미국에서 팔더라도 시골이 아닌 뉴욕에서 팔면 한국에서 뉴스가 되는 식이다. 가수 박진영 소유의 맨해튼 JYP 미국법인 사무실 사진이 온라인에서 나돌자 누리꾼들은 "박진영이 진짜 미국에서 성공했다보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의 소비문화가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구석구석 위세를 떨치지 않았던 적이 있던가? 그러나 미국이 그렇게 자랑하는 맥도날드, 코카콜라, 나이키, 디즈니 같은 브랜드는 압도적인 영향력만큼이나 문화제국주의라는 강력한 반발을 야기해왔다.
'프렌즈'나 '섹스 앤 더 시티' 등 드라마를 통해 재현된 뉴욕과 뉴요커는 한국 젊은이들의 삶과 상상력을 풍요롭게 해주는 최고의 교과서였다. 언제부턴가 뉴욕에서 유행한다는 브런치가 미국 드라마를 타고 들어와 일부 계층의 호사스러운 주말 문화가 됐다. 백화점 문화센터에 '뉴욕 라이프스타일 배우기'라는 강좌가 개설되는 곳은 전 세계에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이다. 한국에서 뉴욕은 정신적 수도 역할을 하고 있다.
표지 사진
■ 뉴욕에 대한 가장 최신의 보고서
"뉴욕 게토지역의 젊은이들이…존재론적 절망까지 창조적 에너지로 삼으며 탄생시킨 힙합은 단순히 음악의 한 장르가 아니라 문화적 운동이며 실천으로 규정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자유주의가 실험되던 뉴욕의 가장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난 힙합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활짝 꽃핀 세계화와 상업화 덕택에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확산됐다."-본문 '폐허의 도시에서 태어난 힙합' 가운데
한동안 해외로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젊은이들이 국내로 복귀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체험한 해외 각지의 풍경을 보고서로 쓰는 것이 유행이 됐다.
그런 점에서 '너 자신의 뉴욕을 소유하라'는 보다 진일보한 여행서라고 볼 수 있다. 아니 '안티 여행서'라고 볼 수도 있겠다. 여행의 감동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은 지루할 수 있는 뉴욕의 일상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하며 4년을 거주한 저자는 스스로 밝히듯이 공부보다는 뉴욕탐험에 열을 올린 젊은 연구자다. 직접 카메라를 들고 뉴욕을 답사하는 저자는 뉴욕에 대한 기존의 질문과 통념을 뒤바꿔 놓는다.
"우리가 소비하는 뉴욕 말고, 진짜 뉴욕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의 시선은 뉴욕의 평범한 시민을 향한다. 과연 이들은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고민하고 그리고 무엇을 꿈꾸는지를 탐구한다. 때문에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뉴욕이 달콤한 사랑 영화였다면 이 저작은 드라이한 뉴욕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연간 30만 명에 달한다는 뉴욕의 한국인 관광객 가운데 뉴요커의 삶이나 뉴욕의 현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뉴욕 양키즈 선수들의 연봉에는 관심이 높지만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에서 24시간 계속 운행되는 지하철을 누가 운전하는지, 센트럴파크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그들은 어떤 조건에서 일하는지는 물으려고 들지 않았다.
저자는 이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그 답을 찾아 나선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가 이런 단순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고, 아니 아예 그런 질문조차 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브런치 먹는 사람들 이스트빌리지
■ 뉴욕의 현대사가 담겨 있는 생생한 르포
"뉴욕이 교외 스타일의 안전하고 가족 중심적 쇼핑공간으로 변하면서 뉴욕 거리에 생동감을 불어 넣어주었던 우연성, 예측불가능성, 개방성, 날것 그대로의 창조성 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본문 '아이 러브 뉴욕' 가운데
세계화 시대 한국사회는 시크한 기호와 상품을 소비하면 누구나 뉴요커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뉴요커가 한국에서 각광 받는 이유를 변화된 시대적 환경에 접목시켜 바라본다. 뉴요커는 열정적으로 일하고 즐기는 사람으로 낭만적인 파리지앵과 달리 매우 전투적으로 살아간단다. 결국 그런 현실적 치열함을 지닌 뉴요커는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의 이상적 모델로 채용됐다는 해석이다.
뉴욕은 꿈과 열정을 시험하는 공간으로 포장되기 시작했다. 과거 미국의 이민사는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아메리칸드림을 추구하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었지만, 소비자본주의 시대에는 한국인이 뉴욕 생활에 도전해 좌절을 딛고 성공하는 식의 서사가 많아졌다. 아이비리그에 도전하는 한국의 명문고 학생들이 부각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뉴욕에서 평범한 이민자의 아메리칸드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저자는 현장에서 알아차렸다.
게다가 저자는 우연적이고 돌발적인 사건으로 점철된 낭만적인 현대도시 뉴욕에 대한 아쉬움도 보다 치밀한 취재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뉴욕은 9·11 사태가 가져온 일상화된 검문과 감시로 인해 점점 더 조지 오웰의 세계로 향하고 있었던 것. 오늘날 뉴욕은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빈곤, 실업, 범죄 등 사회의 불안정성과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사실 그 누구도 뉴욕에 대해서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없다.
그러나 뉴욕을 이해하는 것은 세계 최강국 미국을 이해하는 첩경이며,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한국과 한국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지름길이도 하다.
어찌됐건 1930년대 식민지 경성을 '모던 보이'가 이끌었다면, 오늘날 한국의 문화적 지배자는 '뉴요커'임에 분명하다.
과연 그 한국 속의 뉴요커란 실체가 있는 존재일까? 이 책을 통해 그 실마리를 조금은 엿볼 수 있을지 모른다.
■ '너 자신의 뉴욕을 소유하라' 저자 탁선호
탁선호 사진
"만 3년을 거주했다. 뉴욕 시립대학에서 평범하게도 미디어(TV와 라디오)를 공부했기 때문인지 굉장히 자유롭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결과적으로 뉴욕을 공부하고 온 셈이 됐다."
- 책은 뉴욕 사진으로 가득 차 있는데 알고 보면 여행서가 아닌 다큐멘터리 같은 인문 비평서에 가깝다. 무슨 의도로 접근했나?
"뉴욕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자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가 뉴욕을 바라보는 방식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그래서 뉴욕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조금 속된 표현으로 만일 동남아시아 농촌 주민들이 강남이나 홍대만이 그려진 한국 드라마를 보고 서울을 이해했다면 그것은 조금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한국 대중문화도 딱 그 수준에 그치고 있다. 목표가 하다 더 있다면 1970년대 이후 뉴욕은 신자유주의가 가장 먼저 실험된 공간이라는 점이다. 뉴욕을 연구하면 한국의 미래를 바라보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 뉴욕에서 살때 한국에서 부족한 미학적 관점을 채워주는 면이 많았나?
"글세,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비슷하면서도 다르기 때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우리도 홍대 앞에만 살 수 있으면 나쁘지 않다. 이런저런 공연도 즐기고 흥미로운 사람도 만나고. 문제는 한국이나 미국 모두 알게 모르게 벽을 구축해 가는 것이다. 사회적 양극화를 반영하고 재생산하는 도시공간을 만드는 것이고, 뉴욕의 공간이 그렇게 변해간다는 점에 아쉬움이 남는 것이고…."
- 이제는 서울도 뉴욕보다 깨끗해졌고 세련됐다는 시선도 있다.
"뉴욕의 더러움은 말도 못한다.(웃음) 놀랍게도 한국 젊은이들은 이런 지저분함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 신기하기도 하다. 뉴욕의 매력은 다양한 집단들이 어울려 살면서 부대끼는 가운데 예술적 충만감을 주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사실 뉴욕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가 1970년대였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시기가 가장 예술적으로 충만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현대미술이나 영화 뮤지컬 등이 바로 그 시기에 뉴욕을 배경으로 만개한 거다. 락 음악이 번성했고, 우디앨런의 영화나 대부 같은 마피아 영화도 미학의 탈을 쓰고 나왔다. 결국 서울이 본받아야 할 점도 바로 그런 다양성이 아닐까 한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