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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육정수]뿌리 깊은 ‘스폰서 검사’

입력 | 2010-05-14 20:00:00


검사들은 보통 출근 직후 부별(部別)로 또는 끼리끼리 모여 차 한 잔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과거에는 주말에 있었던 골프나 전날 밤의 룸살롱 술자리가 화제인 경우가 많았다. 골프 모임에는 비용을 대는 스폰서가 으레 붙었고, 술자리에는 유명 연예인이 동석하거나 술시중을 들기도 했다.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전사(戰士)들의 무용담처럼 들렸다.

일부 검사에 한정된 일탈일까

20년 전 ‘골프와 룸살롱과 검사’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검찰의 반향은 거셌다. 평소 절친하게 지내던 한 간부조차 검찰청사 복도에서 마주치자 “당신하고는 이제 말 안 해”라고 쏘아붙였다. ‘왕따’가 되는 기분이었다. 검사들의 싸늘한 눈초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얼마 후 폭력조직으로부터 룸살롱 향응과 골프채 선물까지 받은 ‘판검사·폭력배 술자리 합석사건’이 터지면서 ‘스폰서 검사’의 세계가 펼쳐졌다. 지방의 어느 검사 부인은 장문의 항의 편지를 보내왔다. 모든 검사를 똑같이 보지 말라는 변론이었다. 자기 남편은 밤늦게까지 귀가하지 않을 때 사무실로 전화해보면 틀림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에 답장을 해주려다 결국 못하고 말았지만 그 부인에게는 지금도 빚을 진 느낌이다.

그러나 이번 ‘스폰서 스캔들’과 비슷한 검사들의 비리는 근절되지 않았다. 작년만 해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돈을 받은 검사 2명이 적발됐고,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도 ‘스폰서 검사’로 확인돼 낙마했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사법연수원생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젊은 검사들이 경험하지도 못한 일로 충격을 받은 것이 안타깝다”며 과거의 일로 치부했다. 과연 일부 구악(舊惡) 검사들에게 한정된 일탈이라는 변명이 통할지 의문이다.

설혹 공직사회에서 검찰이 비교적 깨끗한 편에 든다 해도 상대적으로 깨끗한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도덕적으로 절대적 우위에 있어야 할 곳이 검찰 조직이다. 지난날 우리는 뇌물 몇십만 원에 쇠고랑을 차는 경찰관과 행정공무원을 수없이 봤다. 막후(幕後)에는 훨씬 도덕적으로 마비된 검사들도 있었다. 이번 스캔들이 국민에게 얼마나 큰 실망을 안겨주고 법치(法治)에 대한 불신을 가져왔는지 헤아려 봐야 한다.

스캔들의 핵심인 검사장급 2명에 대한 직접 조사가 곧 진행되고, 명단 폭로자와의 대질신문 가능성마저 있다. 진상을 떠나 이런 모습 자체가 검찰로서는 얼굴을 들 수 없는 일이다.

사법시험의 매력은 합격자가 매년 100명 미만이던 1970년대 이전보다 상당히 떨어졌지만 아직도 위력이 크다. 판검사가 된 뒤 스스로 절제 있는 생활을 한다면 권력은 물론이고 명예도 얻을 수 있다. 변호사 개업을 하면 남부럽지 않은 부(富)도 향유할 수 있다.

‘金力으로부터 독립’은 검사 생명선

검사는 보수와 신분에서 특별대우를 받는 ‘특정직 공무원’이다. 검찰청법엔 ‘검사의 지위는 존중돼야 하며, 보수는 직무와 품위에 상응하게’ 정하도록 돼 있다. 차관급 대우를 받는 검사장급 이상이 40명을 넘는다. 한 지역의 지검장이나 지청장은 지역사회에서 사실상 견제 받지 않는 권력자다.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刑) 선고’가 없이는 파면되지도 않는다. 7년마다 적격심사를 받게 돼 있지만 스스로 사표를 내지 않는 한 63세 정년까지 갈 수 있다. 5급 이상 일반 행정공무원의 정년은 60세다.

이런 특권은 검사들의 책무가 그만큼 막중함을 뜻한다. 돈이나 물질, 향락을 탐하지 말라는 강한 메시지가 들어 있는 것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 못지않게 ‘금력(金力)으로부터의 독립’도 매우 중요하다. 검사들이 돈에 휘둘려 권력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기는 날, 검사를 매수하려는 시도는 사라질 것이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