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 하루도 스탈린 치하에서 살아보지 않은 이들이 공산주의 만세를 외치는 데 대해 1956년 헝가리를 탈출한 폴 홀랜더 미 매사추세츠대 교수는 일갈했다. “평등에의 갈구 등 정서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한, 정치적 신념은 오래간다는 걸 보여준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믿는 나로선 이들을 비난할 생각이 없다. 같은 맥락으로 서울 세종로 한복판에서 김정일 만세를 외치는 집단이 있더라도 관용정신을 발휘할 수 있다. 폭력시위나 불법파업으로 나라와 국민에게 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학생들 가치혼란 초래, 유죄다”
5·18 이후 대학은 좌파성향이 지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공산주의가 붕괴되면서 민중민주파(PD)는 약해졌지만, 북한만은 잘나가는 것처럼 보인 덕에 민족해방파(NL)가 운동권을 장악했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한 그들은 김대중-김정일의 6·15정상회담으로 날개를 달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도구’ 삼아 그동안 꿈꿔온 세상도 펼쳐봤다. 2006년과 2008년 선거에서 ‘폐족’ 선고를 받고도 그 맛을 잊지 못해 6·2지방선거에선 과거의 영화를 되찾겠다는 태세다.
그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는다면 나는 인정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같은 계열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사상의 자유를 넘어 정치적 중립 의무를 깨는 건 관용 못 한다. 대전지법 항소심 재판부도 시국선언을 한 전교조 간부들에 대해 “교사의 정치적 견해 표명은 감수성과 모방성, 수용성이 왕성한 학생들에게 가치혼란을 일으킨다”며 14일 유죄판결을 내렸다.
혹시나 전교조가 ‘참교육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실체를 알 필요가 있다. 1989년 출범 때는 순수했던 게 아니라 이미 좌파에 경도된 이들이 만든 조직이 전교조이기 때문이다.
이 씨처럼 교단으로 복귀한 전교조의 사상세례를 받은 중고교생들이 1990년대와 2000년대 졸업생이다. 친북반미를 정의로 배운 젊은 세대는 지금도 과거의 신앙을 ‘진보’라 부른다. NL계인 정진후 현 위원장이 온건파로 분류될 정도니 전교조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고 봐야 한다.
6·15를 앞두고 전교조가 통일운동에 분주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참교육실천강령이나 홈페이지에 공개된 계기수업 자료를 보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고 평화적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고 명시한 통일교육지원법 3조와 딴판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말은 한마디도 없고 “남북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해야 한다” “북한지원은 통일을 위한 투자니 우리가 북한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일색이다. ‘통일부 장관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는 통일교육자를 고발해야 한다’는 통일교육지원법 11조대로 한다면 이들은 고발감일 수 있다.
‘희망의 학교’ 같은 레토릭 역겹다
정 위원장은 작년 한 인터뷰에서 전교조가 탄압받고 있다며 “촛불을 들었던 지금의 중고교생들이 몇 년 후 유권자로 등장한다”고 세상을 위협했다. 전교조가 미래 유권자들을 동색으로 물들이고 있음을 은연중 발설한 것과 다름없다. 그들이 어제 교육선언에서 밝힌 ‘협력과 소통으로 만드는 희망의 학교’란 동료 교원평가는 물론 수준별 수업까지 거부하면서 성과급은 나눠 먹는 곳에 가깝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