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논두렁길을 걸으면 하늘의 별들이 머리에 쏟아진다. 농사의 ‘농農’자가 왜 ‘별辰을 노래曲’하는 뜻을 담고 있는지 금방 깨닫는다. 가을 하늘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2000여개 쯤 된다. 하지만 서울 밤하늘에선 잘해야 4~5개 정도만 볼 수 있다. 서울 가로등은 17만 개나 된다. 보안등도 22만 개나 된다. 지상의 전깃불을 켜니 하늘의 별이 꺼진다. 24시간 불 켜진 곳에서 운동도 하지 못하고 사료와 항생제만 먹고 자라는 양계장의 닭이 생각난다. 현대 도시인들도 그런 닭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걷기가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일분일초라도 현실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많은 걷기 여행자들이 자신만의 트레킹 코스를 찾아 떠나고 있다. 이름도 정겨운 섬진강 매화길, 지리산 둘레길, 제주 올레길, 소백산 자락길 등은 주말이나 휴가철이면 배낭 맨 사람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여행자들이 길에 부여하는 의미는 저마다 다르다. 같은 길을 걸어도 어떻게 느끼고 보느냐에 따라 마음속에 써내려가는 이야기도 달라진다.
주위에서 ‘여러 문제 연구소장’이라고 불리는 스포츠 전문기자인 저자가 직접 돌아 본 국내 21곳의 ‘사색의 길’을 소개했다. 글이면 글, 술이면 술, 운동이면 운동에 두루두루 해박하고 스스로를 ‘천하의 날건달이요, 문화광대’라고 칭하는 저자. 그의 호흡을 따라 숲길, 산길, 골목길, 논두렁길, 밭길, 고샅길, 마실길을 걷다 보면 어느덧 영혼의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하나의 길이 가진 문학, 역사, 철학, 음식, 전설 등 온갖 것들이 글로 버무려졌다. 그래서 시집인지 역사책인지 식물도감인지 헛갈린다. 그러나 마지막장을 넘길 때면 입안에 쩍쩍 달라붙고,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전주비빔밥 한 그릇 배부르게 먹어치운 기분이다.
하동 토지길, 화절령 운탄길, 거문도, 천리포수목원, 부안 변산길, 미리내성지 둘레산길, 정선 민둥산, 무등산 옛길, 대관령 솔향길, 강화도 나들길, 한탄강 궁예길…… 이름만 들어도 설렌다.
◇걷고 싶고 머물고 싶은 우리 길 21/ 김화성 지음/ 1만3800원/ 296쪽/ 동아일보사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