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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에서]스마트 폰 시대의 종이책, 고민만 할 것인가

입력 | 2010-05-19 03:00:00


“아이폰 때문에 걱정입니다.”

최근 만난 한 출판사 대표는 대뜸 아이폰 얘기를 꺼냈다. 아이폰이 출판 시장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걱정이었다. 한국 독서시장의 특성을 보면 30대 중반부터 책을 본격적으로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지금의 20대 후반∼30대 초반은 아이폰에 빠져 있어 독서시장으로의 유입이 예전만 못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요즘 출판 관계자들을 만나면 아이폰, 아이패드를 비롯해 전자책에 대한 얘기가 대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스마트폰, 태블릿PC, 전자책 등으로 다양해지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출판시장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뭔가 변하는 건 분명한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관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주목 받는 출판사가 있다. 인문학 서적을 주로 내는 그린비 출판사다. 이 회사가 한 달 전 내놓은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때문이다. ‘호모 쿵푸스’(사진)라는 이름의 이 애플리케이션은 놀이 형식으로 인문학을 공부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은 철학이나 사회과학 공부에 도움이 되는 커리큘럼을 제시하고, 자신의 철학 성향을 따져보는 ‘철학 성향 테스트’, 철학 문제를 통해 상식을 쌓는 ‘철학 상식 테스트’ 등으로 구성됐다. 그린비에서 펴낸 책을 소재로 만든 것이어서 이용자들을 책 구매로 유도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 애플리케이션은 무료 공개 한 달 만에 7만8000여 건의 내려받기를 기록했다.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유재건 그린비 대표의 생각은 분명하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종이 출판만 고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좋은 책을 내더라도 대중에게 가까이 가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호모 쿵푸스’ 개발을 이끈 마케팅팀의 이경훈 부장도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인문학을 꼭 책으로 만나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철학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인데 너무 ‘멀리’ 있는 것이 문제라면 아이폰에 철학을 싣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썼다.

여기에는 콘텐츠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 콘텐츠의 다양성이나 전문성을 볼 때 책 콘텐츠만 한 게 없다는 것이 유 대표의 생각이다. 따라서 미디어가 다양해질수록 콘텐츠 수요는 많아질 수밖에 없으므로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유 대표는 강조한다.

출판계에선 “신선하다”는 반응 외에 “너무 앞서갔다”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대세를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한다’는 태도로 적극 대처하는 그린비의 행보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 앞에서 고민만 하는 다른 출판사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