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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 감독-올리비에 페르, 칸과 영화를 이야기하다

입력 | 2010-05-19 03:00:00

페르 “하녀, 원작과 달리 풍자 섞인 세련된 영화”
임 “두달 만에 찍었는데… 초청받고 깜짝 놀라”




페르 위원장 2005년
‘바람난 가족’에 감탄
임 감독 칸에 첫 소개


 ‘하녀’의 임상수 감독(왼쪽)을 5년 전 처음 칸에 소개했던 올리비에 페르 스위스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임 감독처럼 시스템의 속박에 저항하면서 미친 듯 용감하게 영화를 찍는 젊은 감독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칸=손택균 기자

'하녀'로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받은 임상수 감독은 올해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이슈메이커다. 그가 칸에 초청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첫 인연은 2005년 '그때 그 사람들'로 감독주간과 맺었다. 당시 감독주간 총괄 디렉터로 임 감독을 칸에 소개한 올리비에 페르 스위스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임 감독이 17일 오후 팔레 드 페스티벌 부근의 마르티네즈 호텔 카페에서 만나 대담을 나눴다. 마르티네즈 호텔은 영화제로부터 초청받아 칸에 온 세계의 유명 영화인들이 머무는 곳이다. "언젠가 칸에서 이렇게 더 나아진 모습으로 만나고 싶었다"는 임 감독의 말에 페르 위원장은 "내 커다란 영광이자 즐거움"이라며 밝게 웃었다.

페르=2005년에도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감독이라는 평가가 대세였다. 나는 그에 앞서 파리에서 '바람난 가족'을 처음 보고 임 감독의 팬이 됐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앨런 파큘라,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 등의 미국 할리우드 클래식 영화를 연상시키는 순수하고 영리한 미장센의 깊이에 탄복했다.

임=사실 '그때 그 사람들'은 독일 베를린 영화제에 먼저 보냈다가 거절당했다.

페르=영화제 심사위원들이 가끔 그런 실수를 한다. 덕분에 칸이 당신을 차지한 것 아닌가.(웃음) 작품 선택은 심사위원의 주관에 좌우된다. 얼핏 불공평해 보이지만 그게 맞는 길이다. 그렇기에 심사위원들이 더 큰 책임감을 갖게 되는 거다.

임='하녀'가 공식 경쟁부문에 초대받으리라는 기대를 안 했다. 9월에 시나리오를 받고 두 달 동안 급하게 찍고 난 뒤 허겁지겁 편집한 영화다. 정말 크게 놀랐다.

페르=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한국 영화의 세계적 위상을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올해 칸 영화제가 한국 영화에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될 거다. 특히 임 감독은 '한국 돌풍'의 중심에 서 있다. 나는 '하녀'를 2008년 칸 영화제에 소개됐던 김기영 감독의 엽기적인 원작과 달리 풍자를 적절히 섞은 세련된 영화로 봤다.

임=나는 김기영 감독의 팬이 아니다. 그냥 전설적인 선배라는 것을 막연히 아는 정도다. 표현이나 내용이 원작과 다른 이유는 그 때문일 수 있겠다. 영화를 만들면서 얼마나 재미있는 분이었는지 조금 알게 됐다. 기회가 닿으면 그의 전기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페르=교훈적 설명으로 마무리하는 원작보다 좀더 관념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저택 세트 같은 것은 실재할 리 없는 상징 아닌가.

임=그렇게 봤나.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을 모델로 만든 공간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최상층의 부자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비밀스럽게 극도로 사치스런 생활을 영위한다.
페르=정말로 그럴게 입고 먹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놀라운 일이다. '하녀' 전에 임 감독이 2년 정도 파리에 머물렀을 때 시나리오를 보여줬던 게 생각난다. 그 프로젝트는 어떻게 됐나? 재미있었는데. 실은 나는 '하녀'에서 당신이 그 시나리오에 내비쳤던 고민의 흔적을 조금 읽었다. 빈부격차, 계층 간 갈등….

임=파리 프로젝트는 '하녀'보다 더 에로틱한 방식으로 인종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 것이었다. 좀 다르다. 아, '하녀'가 칸에 초청받은 덕에 그 시나리오를 거절했던 프랑스 영화사에 소박한 복수를 한 것 같아 은근히 즐겁다.(웃음) 로카르노에서의 새 일은 할만한가.

페르=새로운 시도를 고민하는 중이다. 영화 역사의 수레바퀴는 여전히 젊은 영화인들에 의해 돌아간다. 10년 뒤에나 사람들에게 제대로 인정받을 것 같은 혁신적인 작품들도 많다. 그런 의외의 영화들을 되도록 많이 세상에 알리고 싶다.

임=반면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유명 감독들의 영화 중에는 '익숙한 뉘앙스와 내용'으로 일관하는 게으른 작품이 흔하지 않나.

페르=동의한다. 그런데 당신도 칸에 초청받아 유명인사 대접을 받고 있지 않나.(웃음) 사실 경제위기 등 어려운 상황에 굴복하는 이들이 눈에 많이 띈다. 시스템에 순응해서는 '앞서가는 영화'를 만들 수 없다. 진심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임 감독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 어느 정도 미쳐야 한다. 요즘은 세계 어느 대륙 어느 나라에서 온 영화든 익숙한 뉘앙스와 예측 가능한 내용을 보여주는 경우가 적잖다. 안타깝고 걱정스럽다. '하녀'는 '영화제를 위해 만든 영화'들과 달리 강한 대중성을 갖고 있다. 당신은 늘 다음 영화 찍을 대비를 하면서 영화를 만드는 것 같다.

임=어떤 사람이 나보고 "영화제 경험이 사람을 다르게 만들지 않겠냐"고 묻더라. 주변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은 바뀌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변하지 않을 거다.

페르=국제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받는 일은 한 감독으로서 커다란 사건이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다행이다. 영화를 만들기 쉬워지면 사람도 쉽게 변하더라. 물론 상을 받은 사실에 구애받기는커녕 아예 신경도 안 쓰는 감독도 있긴 하다. 상에 신경 쓰기 시작하는 감독들이 뭔가 중요한 것을 잃는 것은 틀림없다.

임=황금종려상 받고 나서 수상작과 비슷한 영화만 계속 찍는 감독도 많이 봤다.
페르=역시 당신은 위험인물이다. 칸 한복판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웃음) 나이가 들면서 신선한 영감을 잃어가는 감독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당신의 고집이 당신의 영화세계를 오래 지켜주길 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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