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단체聯 소속 40여개 학회 7년 작업 결실학문간 소통-토착화 가속… 8월부터 DB검색
송희성 교수
라틴어 ‘intellectus’는 영어 ‘understanding’, 독일어 ‘Verstand’로 번역한다. ‘understanding’과 ‘Verstand’는 궁극적으로 뜻이 같은 셈. 그러나 국내에서는 영어는 ‘지성’으로, 독일어는 ‘오성(悟性)’으로 번역한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하는 학술용어는 상당수가 외국에서 수입한 것들이다. 각 학문이나 학자마다 용어 번역을 달리 하는 경우가 많았다. 뜻이 통하지 않는 일본식 한자를 사용하기도 한다. 고유명사 표기법이 서로 다르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학문의 토착화가 이뤄지지 않고 학문 간 소통이 불편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 정비사업에는 자연과학, 공학,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분야 등 총 40여 개 학문 분야 단체들이 참여해 약 52만 개 단어를 정리했다. 학문 분야별 단체와 학술단체총연합회가 학술 단어를 수집해 의미를 해석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수차례 거쳤다. 외국에서 들어온 학술용어에 대한 한국어 번역은 물론이고 한국 고유의 학술용어에 대한 영어 번역이나 고유명사 표기법도 이번 사업을 통해 정비했다.
‘a priori’의 번역어 중 ‘선천적’은 ‘a priori’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태어나기 전’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토론을 거쳐 ‘선천적’이라는 단어는 삭제했다. ‘선험적’과 ‘선차적’을 모두 인정하되 어떤 경우에 사용하는지를 명시했다.
‘intellectus’의 번역어인 ‘오성’은 ‘깨닫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일본어에서 온 표현으로 ‘인지하는 능력’이라는 실제 의미와는 맞지 않다. 이번 사업을 통해 ‘지성’으로 통일하되 ‘오성’이라는 단어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일부 분야에서만 ‘오성’을 사용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한국철학회를 대표해 용어정비사업에 참여한 백종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인문학, 사회과학에서는 용어 번역 자체에 각 학자의 독특한 사유체계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번 정비 결과를 강제할 수는 없다”며 “논쟁이 많은 단어는 예외를 인정하되 각 분야에서 어떤 뜻으로 사용되는지 정확히 표기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용어는 지속적인 새로 생기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정비작업이 필요하다”며 “이번에 정비된 단어를 교과서 집필에 참고하도록 하는 등 용어정비사업 결과를 더욱 널리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