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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들여다보기’ 20선]나는 아프리카인이다

입력 | 2010-05-27 03:00:00

◇나는 아프리카인이다/막스 두 프레즈 지음·당대
484년 이어진 흑백 전쟁




아프리카 최남단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흑백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곳이다. 이 책은 1488년 포르투갈 항해사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처음 이 땅에 발을 들여놓은 후 1994년 남아공 최초의 다인종 민주선거가 실시되기까지 500여 년에 걸친 갈등과 대립, 그리고 화해의 역사를 담고 있다. 남아공 출신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남아공 역사에서 기억할 만한 20개의 사건과 인물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포르투갈인들이 처음 상륙했을 때 이 땅에는 유목민 코이코이족이 살고 있었다. 1510년 5월 코이코이족은 포르투갈 병사들과 케이프타운 부근에서 전투를 벌였다. 원주민들이 유럽인에 대항해 처음 벌인 전투였다. 코이코이족은 소떼를 이용해 포르투갈 병사들에게 맞섰다. 휘파람을 불어 신호를 보내면 소들이 달려 나와 포르투갈 병사들을 에워쌌다. 그러면 그 뒤에서 코이코이족은 불을 붙인 막대기를 일제히 쏘아대며 공격을 감행했다. 이런 방식의 전투에서 포르투갈 병사들의 창과 칼은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포르투갈 장교 12명과 선원 50명이 사망하고 40여 명이 중상을 입었다.

포르투갈이 물러가자 영국과 네덜란드가 눈독을 들였다. 유럽인들이 동양 교역의 요충지인 이 땅을 포기할 리 없었다. 19세기 후반 요하네스버그, 킴벌리 등지에서 다이아몬드와 금이 발견되면서 유럽의 쟁탈전은 더욱 격화됐다.

저자는 남아공 인종차별주의와 억압 속에서 탄생한 두 명의 위대한 지도자로 마하트마 간디와 넬슨 만델라를 꼽았다. 간디는 1893년부터 20여 년간 이곳에 체류하면서 인도인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벌였다. 당시 남아공에는 약 7만 명의 인도인이 노예로 이주해 살고 있었다. 간디는 인종차별 반대투쟁단체인 나탈 인도인의회를 결성하고 ‘사탸그라하’라는 비폭력 저항운동을 전개했다. 나탈 인도인의회는 나중에 만델라가 이끌었던 흑인 민권운동조직 아프리카국민회의(ANC)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1990년대 초 숨 가빴던 평화협상 과정과 1994년 만델라의 역사적인 대통령 당선을 뒤돌아보며 500여 년 역사 속에 등장했던 억압자와 피억압자, 영웅과 악당을 모두 조상으로 받아들이고 포용해야만 남아공의 새로운 민주적 질서를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책은 1996년 새 헌법이 선포되던 날 타보 음베키 당시 부통령이 의회에서 했던 연설로 끝을 맺는다.

“저는 이 아름다운 케이프의 거대하고 광활한 공간을 떠다니는 고독한 영혼들, 코이코이족과 산족에게 지금의 제가 존재할 수 있게 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저의 존재는 유럽을 떠나 우리의 모국 땅에서 새로운 가정을 가꾼 이민들의 삶으로 형성됐습니다. 그들이 어떤 일을 저질렀든 변함없이 그들은 제 존재의 일부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람의 일부로서 또한 그 어느 누구도 이 주장에 감히 저항하지 못한다는 인식 속에서 저는 주장할 것입니다. 나는 아프리카인이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