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이족은 노예가 되지 않았다◇아프리카 마사이와 걷다/황학주 지음·생각의 나무
《“인구증가, 질병, 내전, 기아 등 아프리카의 위기로 일컫는 현상들은 본래의 아프리카가 아니며 오히려 진보라는 이름으로 밀려들어온 타자에 의해 누대에 걸친 아프리카의 완전성, 균형상태가 깨뜨려진 결과입니다. 모든 게 다 나빴다고 말할 순 없지만 아프리카가 마땅히 지녀야 하는 모습과는 다른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도 현대문명을 거부하고 독특한 전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부족들이 있다. 아프리카 동부의 중앙 초원지대에 거주하는 마사이족이 대표적이다. 이 책은 시인이자 국제민간구호단체 ‘피스프렌드’에서 활동 중인 황학주 시인이 약 3년 동안 여러 차례 찾아 머물면서 관찰하고 느낀 마사이족의 삶에 관한 기록이다. 시인이 지켜본 그들의 내력, 전통, 생활방식에 대한 산문과 시, 생생한 컬러사진들이 함께 실렸다. 수록된 사진들은 사진가 이상윤 씨가 찍었다.
마사이족은 종족 역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자부심이 강하고 용감한 종족으로 알려져 있다. 노예 수탈시대에 노예중개상들은 마사이족을 노예 매매에서 제외했다. 팔려가는 즉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저항했기 때문이다. 남자 중심의 사회이며 연령에 따른 위계질서가 엄격하다. 시인은 “마사이 부족에서 나이 많은 사람을 설득하거나 사귀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60세 이상의 연령대를 뜻하는 안쿠시들은 자신과 비슷한 연령의 사람들과만 대화한다.
유목부족인 이들은 쇠똥으로 집을 짓고 소의 피, 젖, 고기 등으로 살아간다. 마사이족에게 소는 중요한 교환가치이며 부족의 상징, 생활의 중심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신식 주택인 양철집도 생기고 있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워 이곳에는 맞지 않는 건축양식이지만 이들 사이에서 경제적 상징성을 가진다. 여인들은 화려한 장신구를 손수 만들고 염색기술을 배워 형형색색의 천을 몸에 두른다. 열매를 모으고, 쇠똥을 줍고, 물동이를 지고 나르면서도 직접 구슬을 꿰어 아름다운 장신구를 만든다.
이런 마사이족의 삶에도 많은 변화와 도전,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아프리카를 휩쓸고 있는 후천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의 광풍에서 마사이도 예외가 아니다.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많은 아이가 졸지에 고아가 되고 에이즈에 걸릴 확률도 높다. 여성 할례의식은 심각한 부작용과 폐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저자는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드넓은 마사이의 땅과 문화가 어떻게 개발되고 보존될는지 예측할 수 없다. 신 앞에 나아가 기도할 때 깍지를 낀 양손이 와르르 부러지거나 꺾이지 않는 한 신은 마사이를 보호한다는 그들의 믿음이 끝까지 지켜지기를”이라고 책은 끝을 맺는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