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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임국찬 씨를 아시나요”

입력 | 2010-05-28 11:20:14


임국찬 선수.

"임국찬이라는 분을 아십니까."

올해 69세로 할아버지가 된 그이지만 41년 전인 1969년에는 가슴에 빛나는 태극기를 단 축구 대표선수였다.

 당시 그는 한국 최고의 미드필더로 꼽혔다. 개인기가 뛰어나고 특히 킥에 능했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전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는 대상이 되고 결국 미국으로 떠나야 했던 이유는 딱 한번의 페널티킥 실수 때문이었다.

1969년 10월20일 동대문운동장.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한국 대 호주의 경기가 벌어졌다.

한국으로서는 이 한판을 이겨야만 2승1무1패로 호주와 동률을 이뤄 최종전을 치를 수 있었기 때문에 총력전을 전개했고 후반 20분까지 1-1의 팽팽한 접전이 벌어졌다.

이 때 한국의 최전방 공격수였던 이회택(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상대 반칙으로 귀중한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키커는 임국찬. 3만여 관중이 숨을 죽인 가운데 볼을 페널티킥 지점에 올려놓은 임국찬은 뒤로 10여 걸음 물러난 뒤 슈팅을 날렸다. 이 순간 왼쪽으로 뛰어들 자세를 취하던 호주 GK 커리는 갑자기 방향을 바꿔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볼을 가슴에 안고 말았다.


한국축구 16년만의 월드컵 진출 꿈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이 경기 후 모든 비난은 키커인 임국찬에게만 쏟아졌고 견디다 못한 그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말았다.

세월이 지나고 2000년대가 되서야 모국을 방문하기 시작한 임국찬 씨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한국의 조별리그 상대였던 미국축구대표팀에 대해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주기도 했고,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는 미국 교민 응원단과 함께 독일 현지에서 한국 팀을 응원하며 겨우 과거의 아픈 기억을 털어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 한국대표팀의 수문장이었던 오연교는 몇 번의 실수 때문에 "골키퍼 때문에 망했다"는 엄청난 질책을 받아야 했고 결국 지병으로 2000년 40세에 단명하고 말았다.

그의 지병이 이런 비난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평소 고인은 "쏟아지는 가시돋힌 비난이 정말 가슴 아팠다"고 말하곤 했다.

 하석주 선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는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전반 28분 절묘한 킥으로 선제골을 넣었던 하석주(현 전남드래곤즈 코치)가 불과 2분 뒤 라미레즈에게 백태클을 해 퇴장 당한 뒤 10명이 싸운 한국이 1-3으로 패하고 말았다. 이후 비난의 화살이 하석주 코치에게 날아들었다.

이처럼 예전에는 심리적 부담감 때문에 실수를 하는 게 다반사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심판 판정 기준을 명확하게 숙지하지 못해서 실수하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 월드컵 때는 백태클에 대해 심판들이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 하석주 코치는 "사실 팀 모두가 당시 백태클 규정 적용 강화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페널티지역 안에서 심판을 속이는 '시뮬레이션 액션'을 엄격하게 보겠다고 선언했다. 한국 선수들은 이 규정을 잘 지켰다.

반면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토티는 한국과의 16강전에서 페널티킥을 유도하기 위해 넘어졌다가 시뮬레이션 액션이라는 판정을 받고 퇴장당하고 말았다.

2006 독일 월드컵 때는 FIFA가 '오프사이드 규칙을 공격에 유리하도록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한국 수비수들은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상대 공격수 알렉산더 프라이가 공을 잡았을 때 부심이 기를 들어 오프사이드를 선언하자 멈칫했고, 이때 주심이 그대로 인플레이를 선언하는 바람에 프라이에게 어이없게 골을 빼앗기고 말았다.

14일 앞으로 다가온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FIFA는 이번 월드컵에서 △심판에 대한 항의 △팔꿈치 가격 △상대 안전 위태롭게 하는 태클에 대해 엄격한 판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리의 태극전사들이 머릿속에 잘 새겨두어야 할 점이다.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

▲ 동영상 = 월드컵을 잊은 축구선수, 유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