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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은 기자의 베이스볼 벤치스토리] “난 슈퍼스타 이동학! 패전처리도 OK”

입력 | 2010-05-29 07:00:00

이동학. [스포츠동아 DB]


#2003년. 현대 4년차 투수 이동학(사진)은 최초의 ‘예비군 신인왕’에 올랐다. 팀 동료 이택근과 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얻어낸 열매였다. 8승 3패에 방어율 5.35. 어쩌면 ‘왕’이 되기에는 미흡한 성적. 하지만 시즌 중반부터 1군에 합류한 이동학은 분명 현대의 우승에 가속도를 붙인 원동력이었다. 4년 전 이동학에게 억대 계약금을 안겼던 현대는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이동학 역시 “비록 대단한 성적은 아니었지만 생애 한 번 뿐인 영광이라 정말 기뻤다”고 회상했다. 팀과 자신이 동시에 성공했던, 유일한 한 해였기 때문이다.

#2005년. 이동학이 여전히 후회하는 순간이 있다. 어깨 부상 때문에 2004년을 단 3경기 만에 마감한 뒤 모처럼 씽씽 잘 던지던 참이었다. 팔꿈치가 슬슬 이상하다 싶었지만 자꾸 욕심이 났다. “그래도 내가 신인왕 출신인데,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젊으니까 괜찮겠지, 여기서 멈추면 안 되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방심하고 모른 척 했던 게 아직도 한으로 남아요.” 결국 시즌 중반에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이어진 재활∼부상∼재활의 악순환. 처음으로 “야구가 참 힘들다”고 생각했다. 창원에 있는 부모를 떠올리며 간신히 버티는 게 일과였다. “자꾸 좌절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마음고생 많이 하셨어요. 늘 ‘힘내라’, ‘아프지 마라’는 말씀만 하셨으니 더 속상했고요.” 그 시절을 생각하면 여전히 눈가가 젖어 온다.

#2010년. 이동학은 지금 1군에 있다. 주인공은 아니다. 2군에서 함께 방을 썼던 후배 고원준이 당당히 선발 마운드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처지다. 부러운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뿌듯한 심정도 숨길 수 없다. 이제는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힘든 시간이 많았지만 한 번도 내가 야구 선수라는 사실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야구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묻자 망설임 없이 ‘지금’이라고 대답했다. “11년째 프로야구 선수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다.

팀이 크게 지고 있는 9회, 이동학이 마운드에 오른다. 아무도 바뀐 투수의 이름을 궁금해 하지 않는 그 순간,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지금 잘 막아서 동료들을 빨리 쉬게 해주겠다”고. 모두가 에이스일 수도, 모두가 마무리 투수일 수도 없다. 이동학 역시 넥센이라는 톱니바퀴에 꼭 필요한 부속품이다. 더 이상 최고일 수 없어도 꾸준한 노력의 가치를 아는, 그게 지금 이동학의 야구다.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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