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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이’ 교육의원 선거… 뒷순위 후보 아예 포기

입력 | 2010-05-29 03:00:00

■ 요지경 선거 왜?




“뭐하는 사람이에요?”
교육감 감시 ‘교육 국회의원’
유권자, 역할도 후보도 몰라

홍보도 않고 운동도 않고

투표용지 순서 의존도 커
유리한 번호 뽑으면 유세안해

처음이자 마지막
다음 선거땐 직위 사라져
결격돼도 재·보선 안치러

당선되면 ‘대박’
교육예산 32조 의결 권한
의정활동비만 年 6000만원


“교육의원이 뭐하는 사람이에요?”

서울 종로구에 사는 김모 씨(40·여)는 “뽑는다고는 들었는데 후보가 몇 명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음 달 2일 치러지는 지방선거에는 전국 총 82개 선거구에서 82명의 교육의원도 뽑는다. 후보자만 269명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을 아는 유권자는 많지 않다. 이 때문에 “투표용지 게재 순서를 뽑는 추첨 때 사실상 교육의원 선거는 끝났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 민주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에서 두 번째를 뽑은 한 교육의원 후보는 별다른 선거운동을 하지 않고 있다. 이 후보는 “나름대로 선거운동을 하고는 있지만 돈도 조직도 없고 선거구가 너무 넓어 사실상 눈에 띄지 않는 것”이라며 “순서를 잘 뽑은 것은 분명 기회다”고 말했다.

뒷번호를 뽑자 아예 선거운동을 포기한 후보도 있다. 일부 선거구에는 본 등록을 해놓고 해외여행을 간 후보도 있다. 개인 홈페이지도 개설하지 않고 홍보지와 플래카드도 만들지 않은 경우도 있다.

심지어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도 교육의원 공약은 나와 있지 않다. 유권자들이 정보를 얻을 통로가 거의 없는 셈이다. 이에 대해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교육의원들은 전국적으로 너무 많아 공약을 올리지 못했다”며 “가구마다 배달되는 공보물에는 간단한 공약이 실려 있어 공보물을 꼼꼼히 살펴보면 된다”고 말했다.

진보진영에서는 서울시내 선거구마다 전략적으로 교육의원 후보를 한 명씩 냈다. 진보진영 서울교육감 단일 후보인 곽노현 후보는 트위터에 공식 연대하고 있는 교육의원의 명단과 연락처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기재순서가 뒤죽박죽이라 알리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서울은 평균 5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는데 진보진영에서 각 선거구에 1명씩만 냈다면 승리하는 게 당연하지만 시민들이 누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어차피 순서 뽑기 싸움”이라고 말했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유권자들이 교육의원에 대해 사전지식이 없어 투표용지 첫 번째나 두 번째에 있는 후보를 뽑든지 아예 기권할 경우가 높을 것”이라며 “후보 자질 검증에 문제가 생길 것 같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모 후보는 당선이 되면 좋은 자리를 주겠다며 경쟁후보를 매수하려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불구속입건됐음에도 투표용지에 게재됐다. 강원도에는 선거구에 단독 출마한 교육의원 후보가 있어 무투표 당선이 확정되기도 했다.

‘깜깜이’ ‘로또식’ 선거가 될 위험이 있는 교육의원은 ‘교육 소통령’인 교육감을 감시하는 말 그대로 ‘교육 국회의원’의 역할을 한다. 진보진영 교육감 후보들이 모두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 학생인권조례와 같은 조례안도 이들을 거쳐야 한다. 또 교육에 관련된 정책 결정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실제 2008년 서울시 교육위원회는 공정택 전 교육감의 국제중 지정을 무기한 보류해 당초 계획보다 설립을 늦췄다.

교육의원들은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이 제출한 교육정책과 예산안에 대한 의결권도 갖는다. 올해 전국 교육청의 예산은 32조 원에 달한다. 이들이 예산에 제동을 걸면 정책 추진도 멈출 수밖에 없다. 지난해 경기도교육위원회는 김상곤 교육감이 편성한 무상급식 예산 171억 원 중 83억여 원을 삭감해 무상급식 정책을 무산시켰다. 특정 사안에 대한 진상조사위를 꾸리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교육위원회가 독립기구로 존재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부터 교육의원으로 이름을 바꿔 시·도의회 산하 교육위원회 소속이 된다. 교육위원회는 과반수의 교육의원과 나머지 시·도의원으로 구성된다. 교육예산이 시·도 예산에서 나가는 만큼 의결권을 놓지 않으려 다투다 교육의원을 따로 뽑되 다른 위원회에는 가지 못하게 했다. 그 대신 교육의원 수를 많게 해 교육의 전문성은 살렸다. 교육의원은 의정활동비도 시·도의원과 동일하게 연간 6000만 원 이상을 받고 시·도의회 본회의에도 참석한다.

이번 교육의원 직선제는 2월 국회에서 통과된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에 따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뽑는 ‘일몰제’다. 이는 올해 초 여야가 교육의원 선출 방식을 둘러싸고 비례대표제와 직선제로 의견을 달리하다 결정된 것이다. 재·보궐선거 사유가 발생해도 치르지 않는다.

교육의원 선거가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뀌면서 선거 형태도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변경됐다. 교육의원 선거구는 선거구당 유권자가 47만3681명으로 국회의원 선거구의 약 3배이고, 시·도의회 의원 선거구의 9배다. 서울시 제1선거구 김대성 후보는 “우리 선거구에 유권자 수가 91만 명인데, 아무리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녀도 10만 명을 못 만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운동에 열을 올리는 후보들도 있다. 대부분 전·현직 교육위원으로 지역에 조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현 교육위원인 한 후보는 “가장 아래쪽 번호를 받았지만 인지도나 선거 경험에서 충분히 앞설 수 있다”면서도 “맨 윗자리 후보가 아무리 인지도가 낮아도 20% 이상은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유력한 교육감 후보를 따라다니며 유세활동을 하는 교육의원 후보도 있다. 제2선거구 최보선 교육의원 후보는 “선거법상으로는 안 되지만 교육감은 그나마 유권자들이 많이 알고, 넓은 선거구를 감당할 수 없어 같이 다니면서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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