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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강국, 그 경쟁력의 뿌리를 찾아서]한국

입력 | 2010-05-29 03:00:00

“상상력을 제품으로” 서울 초등생 ‘디자인 걸음마’ 떼다




■ 수락초 디자인수업 현장

펭귄은 ‘향수통’으로 변신했고 달팽이는 ‘헤드폰’이 됐다. 28일 오전 서울 수락초등학교 6학년 1반 학생들이 자연물에서 영감을 얻어 고안해 낸 디자인이다. “배는 통통하고 부리가 뾰족한 펭귄의 특징을 살렸어요. 펭귄 모양 향수통의 배를 누르면 향수가 부리를 통해 뿜어져 나오는 거죠.”(김은빈 군) “달팽이 두 마리를 이어서 만든 헤드폰이에요. 양쪽 달팽이집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달팽이의 길쭉한 눈은 USB선 역할을 해요.”(정성욱 군)

○디자인 교과서를 펼친 어린이들


서울 어린이들이 디자인 교과서를 펼쳤다. 서울시는 지난해 시교육청과 공동으로 1년 6개월 작업 끝에 국내 첫 디자인교과서를 개발했다. 초등학교 5, 6학년용으로 제작된 이 교과서는 올해 3월 새 학기부터 학교별 창의재량활동시간 등에 활용되고 있다. 교과서 채택이 학교별 자율 권한이라 참여율이 저조하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도 사실. 하지만 현재 서울 시내 586개 초등학교 중 91%인 535개교가 수업 중 이 교과서를 쓰고 있다.

28일 서울 수락초등학교 6학년 1반 학생들이 창의재량활동시간을 활용해 디자인 수업을 듣고 있다. 원대연 기자

교과서는 학생들이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소재들을 디자인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게 특징이다. 전체 지면 90% 이상을 사진으로 구성해 학생들이 디자인 개념을 부담스럽지 않게 받아들이도록 했다. 아이들이 생활에서 흔히 쓰는 이모티콘이나 즐겨먹는 과자의 포장지 등도 예시로 들어있다.

이날 수업에서 학생들은 서너 명씩 짝을 지어 함께 작업을 했다. 각자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10개 이상 적은 뒤 토론을 통해 최종 안을 결정했다. 팀에는 파스텔과 종이 등 재료가 한 세트씩 주어졌다. 한 아이가 밑그림을 그리면 다른 아이는 옆에서 색을 칠하는 식으로 협동 작업이 이뤄졌다. 각자 좋아하는 동물, 식물에서 출발한 아이들의 상상력은 실제 제품화를 해도 좋을 수준의 아이디어 제품으로 완성돼 나갔다.

이 같은 디자인 수업의 목표는 무엇일까. 최미미 담임교사(41)는 “아이들이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수업이 많지 않다”며 “디자인 수업을 통해 의사소통 방식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고 서로의 생각이 더해지면서 생각의 폭도 넓어진다”고 말했다. 교과서 제작에 참여한 최인규 인제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디자인이란 단어에는 본래 ‘계획한다’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돼 있다”며 “디자인 수업은 학생들에게 머릿속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이나 작품으로 기획하고 완성해 내는 문제 해결 능력을 길러주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영국에서도 창의성 교육 차원에서 ‘아트와 디자인’ ‘디자인과 기술’ 등 디자인 교과를 학교에서 필수로 가르치고 있다. 미국과 일본 학생들도 통합교과 과정 중 하나로 디자인을 배운다.

○중고등학생은 내년부터

서울시는 초등학교에 이어 중고등학교용 디자인교과서도 개발 중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까지 2년에 걸쳐 시범 및 정책연구학교 5곳을 지정해 적합한지를 논의해 왔다. 서울시는 초등학교 현장에서 들려오는 긍정적인 반응에 힘을 얻어 현재 시교육청과 함께 디자인교육 교재개발 추진단을 꾸린 상태. 올해 10월 개발을 목표로 디자인 교과서 및 교사용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

중학생들이 사용할 ‘디자인 이해’와 고등학교 학생을 위한 ‘공공디자인’ 교과서는 초등학교와 마찬가지로 학교마다 재량에 따라 선택해 수업에 활용할 수 있다. 시는 각 학교가 내년 첫 학기부터 관련 교과 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서울 둔촌중과 상명중,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 영신여실고, 미래산업과학고를 ‘디자인교육중점학교’로 선정했다. 시는 이들 학교를 ‘디자인 거점학교’로 육성해 디자인교육 노하우를 다른 학교로도 전파할 계획이다. 이 학교들은 교과 시간 중 디자인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디자인 관련 교육과정 및 교과용 도서, 교육자료를 우선적으로 적용받는다. 새로 개발된 디자인교육 프로그램들이 현장에 적합한지를 판단하는 테스트 베드 역할도 한다. 조관호 서울시 학교지원담당관은 “학생들이 모두 전문 디자이너가 되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디자인을 접함으로써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고 자기표현 능력을 키울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디자인 창업에서 제품 개발자금까지 원스톱 서비스”

조원석 디자이너의 조명 작품 ‘엑스레이 라이트’. 병원에서 쓰는 X선 박스를 실내조명으로 활용했다. 사진 제공 서울디자인마케팅지원센터

■ 서울 디자인마케팅지원센터 가보니

제품 디자이너 조원석 씨(27)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진로를 고민하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대학 졸업 직전 서울디자인재단 지원을 받아 영국 디자인전시전인 ‘디자이너스 블록’과 일본 ‘100% 디자인도쿄’에 참가한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다니던 병원에서 보던 X선 박스를 실내조명으로 써도 재밌겠다는 생각에서 만든 조명제품 ‘엑스레이 라이트’가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독특한 발상’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 이 제품은 현재 프랑스와 미국, 이탈리아 등의 유명 인테리어 전문 셀렉트숍과의 독점계약으로 판매되고 있다. 개당 228달러로 저렴한 가격도 아닌데 추가 납품 ‘독촉’을 받고 있을 정도다. 그는 “내 작품이 평소 롤모델로 생각했던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품과 함께 진열돼 있다는 점만으로도 감격스럽다”며 “시 지원 없이 신진 디자이너 홀로 해내기는 쉽지 않았을 일”이라고 했다.

이 제품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서도 볼 수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22일 가로수길 초입에 서울디자인마케팅지원센터를 열었다. 가로수길 인근에 조 씨와 같은 젊은 디자이너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디자인기업 570여 곳이 밀집해 있기 때문. 센터는 디자인과 관련해 창업부터 제품개발, 마케팅, 기업운영 등에 대한 총체적 도움을 제공한다.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전용 상담전화(02-3448-0120)로 문의하면 된다.

27일 찾아 간 센터에선 밝은 조명 아래 진열된 아기자기한 제품을 볼 수 있었다. 물방울이 고인 듯한 모양의 자석과 천사 날개를 연상시키는 빨래집게, 초콜릿으로 착각할 법한 가죽 지갑 등 기발한 아이디어가 눈에 띄는 상품이다. 센터에서 일일이 전시하지 못한 제품은 판로 개척을 지원하기 위해 개설한 온라인 쇼핑몰 ‘디자인태그(www.designtag.co.kr)’에서 볼 수 있다. 서지은 센터 파트장은 “주로 해외 전시회에 참가해 수출에 성공했거나 시에서 제작비용을 지원하는 ‘우수디자인아이디어 제품화사업’ 선정작들”이라며 “개소 전부터 해외 바이어의 문의가 이어져 센터 내부를 일부러 전시관처럼 꾸몄다”고 말했다.

디자이너 왕춘호 씨(31)의 작품인 ‘포크 모양의 케이블 정리선’과 ‘나뭇잎 케이블 타이’도 전시관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해 센터에서 지정하는 ‘우수디자인아이디어’로 선정돼 지원금 및 컨설팅 사업을 지원받은 제품들이다. 이달 초 판매를 시작해 한 달도 안돼 15개국에 팔려나갔다.

왕 씨는 “제품 한 개를 개발하는 데 평균 1000만 원 이상 든다”며 “시에서 개발 자금을 지원해 준 덕에 디자인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伊디자인 스쿨 2곳  서울市, 유치 추진


‘2010 세계디자인수도의 해’를 맞아 세계 디자인의 다양한 시선이 서울로 모이고 있다.

조만간 서울에서도 글로벌 디자인기관들이 진행하는 디자인교육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올해 말 문을 열 ‘서울디자인연구소’에 이탈리아 디자인전문 교육기관인 ‘도무스 아카데미’와 ‘베네통 파브리카’ 유치를 추진 중이라고 28일 밝혔다.

서울 종로구 옛 이화여대 동대문병원 자리에 들어서게 될 서울디자인연구소는 디자인 패러다임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한다는 목표로 마련된 기관. 시는 연구소를 거점으로 삼아 관련 업계 사람들에게 디자인연구 및 개발, 교육과 관련된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디자인경영과 기술 등 맞춤형 교육도 실시할 예정이다.

류경기 서울시 디자인서울총괄부본부장은 “질 높은 커리큘럼을 위해 도무스 아카데미와 구체적인 프로그램 개발을 논의 중”이라며 “베네통 파브리카와도 상호 교환방문을 통해 실무 단계의 협력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베네통 파브리카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30여 명의 젊은이들이 사진과 음악, 그래픽, 인터랙티브 미디어 등을 연구하는 창작 스튜디오다. 이 밖에 프랑스 트렌드 전문 업체인 ‘파클레파리’ 등과도 손잡고 디자인 연구교육 발전 방안을 모색 중이다.

서울시는 해외 교육기관들을 연구소로 유치해 시민 및 전공생들을 위한 정규교육과정을 개설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기관 소속 유명 강사들을 서울로 초청해 수업을 진행하는 계획까지 추진하고 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