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지음·이창신 옮김/404쪽·1만5000원·김영사정의는 ‘무엇을 어떻게’ 심판할수 있을까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20년 정치철학 강의 엮어“행복-자유-미덕의 관점서정의에 관한 생각 고찰을”
1시간 반 뒤 이들 미군 4명은 중무장한 탈레반에게 포위됐고 루트렐을 제외한 3명과 구출 작전에 나선 미군 16명이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루트렐은 “내 평생 가장 어리석고, 가장 덜 떨어진 결정이었다”고 후회했다. 그렇다면 3명을 희생시켜 19명의 목숨을 구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저자가 최근 20여 년간 학생들 사이에서 명강의로 손꼽힌 자신의 정치철학 강의 ‘정의(Justice)’를 책으로 엮었다. 저자는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 교수가 됐고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를 발표해 명성을 얻었다.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치철학 강의인 ‘정의(Justice)’. 샌델 교수는 정의를 판단하는 관점으로 행복, 자유, 미덕을 제시하며 독자들이 자신의 정의관을 고찰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례를 분석한다. 사진 제공 김영사
이번엔 당신은 기관사가 아니라 철로를 바라보며 다리 위에 서 있는 구경꾼이다. 저 아래 철로로 제동장치가 고장 난 전차가 질주하고 그 앞에 인부 5명이 있다. 당신 옆에는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있어서 그를 전차 앞으로 밀어뜨리면 열차가 멈춰 5명은 살릴 수 있다고 치자. 어떻게 하겠는가. 희생자의 수로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이번에는 부담스러운가.
저자는 정의를 이해하는 관점을 세 가지로 제시한다. 행복, 자유, 미덕이 그것이다. 정의에 대한 논쟁은 이런 가치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행복의 극대화를 강조한 관점이 공리주의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방안이 정의라는 것이다.
정의를 미덕과 밀접하게 연결지어 해석하는 이론이 있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미덕과 좋은 삶에 대한 견해를 분명히 해야 한다며 도덕을 어느 정도 법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미덕과 거리가 먼 행위를 하는, 예컨대 폭리를 취하는 자들은 법으로 심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의 정의론은 미덕에서 출발하는 반면 근현대의 정의론은 자유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경제적 풍요를 지지하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의에서 ‘심판’이라는 한 가닥 끈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2008∼2009년 구제금융 위기 때 미국 투자회사들이 세금에서 나온 구제금융 기금으로 상여금 잔치를 벌인 일, 2004년 허리케인이 플로리다를 휩쓸고 간 뒤 재화와 서비스가 부족한 상황에서 발생한 폭리 논란 등 생생한 사례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정의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도록 도덕적·철학적 ‘사고(思考) 여행’으로 안내한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