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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모던 타임

입력 | 2010-05-29 03:00:00

◇모던 타임/클라크 블레즈 지음·이선주 옮김/376쪽·1만8000원·민음사

‘그리니치 표준시’를 둘러싼 열강의 각축전




산업화시대인 19세기의 ‘발명품’ 가운데 하나로 ‘표준시’를 꼽을 수 있다.

표준시 도입 이전 세계는 태양을 기준으로 시간을 측정했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무수히 많은 시간이 존재했다. 1870년대 사람들은 마을의 시구(時球·정오를 알리는 공 모양의 장치)가 떨어지면 시계를 정오에 맞췄다. 마을마다 태양이 지나는 시간이 달랐기 때문에 조금만 떨어진 마을로 이동을 하더라도 시계를 다시 맞춰야 했다.

19세기 중엽 북미 대륙에는 144개의 공식 시간이 있었다. 오늘날 여름철에 서울이 오후 4시일 때 미국 뉴욕은 오전 3시, 프랑스 파리는 오전 9시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은 지역별 시간을 통일하고 단순화시킨 표준시 덕분이다.

이 책은 영국 출신으로 표준시 도입에 앞장섰던 샌퍼드 플레밍(1827∼1915)의 업적을 다루었다. 전기 형식을 띠지만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산업화로 인해 시간의 혼란을 겪었던 19세기 후반의 사회상, 본초자오선 설정을 둘러싼 열강의 각축전 등을 흥미롭게 그려냈다.

저자는 ‘속도’라는 화두를 통해 플레밍이 추진했던 표준시 얘기를 풀어나간다. 철도의 발달로 지역 간 이동 속도가 빨라지기 전까지 시간의 혼란이란 낯선 얘기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한 지역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 정해놓은 시간만 따르면 그만이었다. 우차나 마차를 이용한 이동은 시간의 혼란을 초래할 만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철도의 발달에 따라 사회는 기존의 능력으로는 측정 불가능할 만큼 빠른 속도로 변화했고 표준화되지 않은 시간이 혼란을 초래하기 시작했다. 우선 ‘어느 도시의 표준이 열차시간표에 인쇄돼야 하는가’라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저자는 이를 “노선상의 도시, 승객, 철도회사 가운데 누가 시간을 소유하는가의 문제였다”고 설명한다.

초기에 시간을 소유한 주체는 철도회사였다. 미국의 철도 환승역에는 매표소 뒤에 시계들이 걸려 있었는데 지역이 아닌 철도회사 이름이 붙어 있었다. 예를 들어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라면 전 노선에 필라델피아 시간을 적용하는 등 철도회사마다 자신들만의 시간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같은 노선을 달리는 열차들이 서로 다른 시간을 적용하는 바람에 발생하는 철도 사고도 빈번했다.

캐나다에서 철도 부설 업무를 맡았던 플레밍은 표준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그는 표준시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하면서 논의를 주도했다. 영국을 시작으로 표준시를 채택하는 나라들이 생겼고, 1884년에는 표준시의 기준이 되는 본초자오선을 결정하는 회의가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다. 참가국들은 프랑스의 반대를 꺾고 영국 그리니치를 통과하는 자오선을 본초자오선으로 결정했다.

저자는 표준시 이전의 시간이 “신들의 시간이며 해와 달의 시간인 ‘자연시간’”이었다고 정의한다. 합리성의 시대인 빅토리아 시대에 들어서 시간은 ‘인간의 것’이 됐다는 해석이다. 그에 따르면 빅토리아 시대는 신앙과 과학, ‘자연적’ 사고와 ‘이성적’ 사고 사이의 충돌이 이뤄졌던 시기다. 이전까지는 해뜰 때를 기준으로 삼는 농부의 시간, 해질 때를 기준으로 삼는 이슬람교도의 시간 등 시간에 대한 관념이 서로 달랐다. 표준시가 도입되면서 하루는 자정에 시작하게 됐고 자연 세계의 불규칙한 해돋이와 해넘이에 더는 의존하지 않게 됐다.

표준시가 채택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인류는 훨씬 빨라진 교통수단,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발달 등으로 또 다른 차원의 ‘속도’와 ‘시간’에 맞닥뜨렸다. 저자는 “이런 양상의 변화는 시간-공간의 연속체가 갖는 보통의 고정된 시간개념, 고정된 공간개념을 초월한다”고 말한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