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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광대 샬리마르

입력 | 2010-05-29 03:00:00

◇광대 샬리마르/살만 루슈디 지음·송은주 옮김/632쪽·1만5000원·문학동네

광대의 복수… 영웅의 몰락




살만 루슈디는 1988년 출간한 ‘악마의 시’에서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를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암살 위협에 시달렸던 작가다. 이 작품은 영국 정부의 보호 아래 생활하다 2000년 이후 미국에서 작품 활동하던 중 그가 2005년 발표한 소설이다. 이야기는 한 테러리스트에게 인도의 미국대사를 지냈던 유대인 막스 오퓔스가 암살되는 사건에서 시작한다.

1991년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딸 인디아의 아파트를 찾은 막스는 스스로를 ‘광대 샬리마르’로 칭하는 운전사의 칼에 맞아 숨진다. 샬리마르가 신분을 숨긴 채 막스에게 접근한 뒤 그를 잔인하게 살해한 것은 극단적이거나 거창한 종교적, 정치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얼핏 테러리즘으로 보이는 이 사건의 이면에는 샬리마르라는 남자가 깊이 품은 개인적인 원한이 도사리고 있다. 그 원한에는 그가 사랑했던 무희 부니와 얽힌 치정, 카슈미르 분쟁 등이 가로놓여 있다.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 인도 카슈미르의 계곡의 한 마을로 되돌아간다. 줄타기 광대였던 샬리마르는 그곳 최고의 미녀 무희인 부니와 사랑에 빠진다. 아내 부니는 무슬림인 그와는 달리 힌두교도다. 종교가 다른 그들이 사랑으로 힘겹게 이뤄놓은 조화로운 세계는 오래 가지 못한다. 부니는 인도의 미국대사로 온 막스의 첩실이 돼 샬리마르를 버리고 떠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가 있던 막스가 인도 여인인 부니를 임신시킨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순진한 힌두교도 소녀를 착취한 사악한 미국인’으로 지탄받게 된다. 막스의 명성은 땅에 떨어지게 되고 부니는 딸 인디아를 막스의 아내에게 넘긴 뒤 고향으로 돌아와 숨어 지낸다.

샬리마르는 사랑을 배반한 부니와 그녀를 취한 막스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그 무렵 인도와 파키스탄 간에 카슈미르 분쟁이 폭발하고 막스는 가족을 비롯해 모든 것을 잃는다.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에 짓눌린 개인의 비극 속에서 샬리마르의 적개심은 테러란 형태로 발화한다. 그는 국제적 테러조직에 들어가 암살자가 되는 길을 택한다.

살만 루슈디. 사진 제공 문학동네

작가는 샬리마르가 테러리스트로, 그가 사랑했던 부니가 창부로 전락하고,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제2차 세계대전 레지스탕스의 영웅이었던 막스가 지하세계의 검은 손으로 살다 암살당하는 파국의 과정을 그려 보인다. 이야기의 스케일은 방대하다. 공간적으로는 아시아, 유럽, 미국을 넘나들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부터 종교분쟁, 국제 테러리스트 조직 등이 등장한다. 이 소설 속에서는 가해자와 희생자가 고정돼 있지 않고 증오의 원인과 결말 역시 선후관계가 분명치 않다. 작가는 혼란스럽고 어두운 이 세계에서 폭력과 증오로 반목하는 이들은 사실 모두 피해자이며 희생자임을 보여준다. 탈출구 없이 계속해서 파괴와 복수의 악순환을 낳는 세계는 무겁고 암담한 빛깔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