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의 중요한 내용을 일부 드러내는 스포일러(spoiler)의 소지가 있습니다.
영화를 안 보신 분은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한 후 글을 읽어주세요.
참으로 흥미롭고도 충격적이지요? 똑같은 탄소성분이 어떨 땐 흔하디 흔한 흑연이 되지만, 또 어떨 때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다이아몬드가 되니 말이지요. 이때 탄소로 하여금 보잘 것 없는 흑연이 아닌, 영롱한 다이아몬드로 다시 태어나도록 운명을 결정해주는 요소는 바로 고온과 고압이라는 처절한 고통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가장 아름다운 가치는 역설적이게도 지옥처럼 끔찍한 고통의 과정을 통해 탄생하다는 얘기지요.
올해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한국영화 ‘시(詩)’가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아름다움은 고통에서 잉태된다’는 다이아몬드의 진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지요.》
[1] 스토리라인
시
그런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입니까. 중학생 손자가 친구들과 함께 같은 학교 여학생을 성폭행해 여학생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지요. 설상가상으로 병원에선 미자에게 “치매에 걸렸다”는 진단결과까지 통보합니다.
아! 세상은 왜 이리 잔인하고 또 비정한 걸까요. 미자는 손자의 합의금으로 쓸 500만 원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여의치 않고, 결국 굴욕적인 행위(?) 끝에 돈을 마련하지만 손자는 경찰에 잡혀가고 맙니다. 미자는 ‘아네스’라는 세례명을 가진 피해소녀의 사진을 보면서 손자를 대신해 속죄하며 소녀의 고통을 느끼려 할 뿐이지요.
문화원 시 강좌의 마지막 날. 강사 앞에는 미자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쓴 ‘아네스의 노래’란 시 한 편만이 놓여있을 뿐입니다. 사라진 미자는 어디에서도 보이질 않고, 카메라는 피해소녀가 몸을 던졌던 다리에서 무심코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봅니다.
[2] 생각 키우기
그래요. 영화 속 주인공 미자가 “시상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고 고뇌하면서도 그토록 시를 쓰고자 했던 이유도 마찬가지에요. 그녀는 질식할 듯한 현실을 탈출하기 위한 유일한 통로로 시를 쓰고자 했던 것이지요. 미자가 사람들과 진지한 얘기를 나누다 말고 갑자기 뭔가에 홀린 듯 멍한 표정으로 길거리의 꽃과 나무를 바라보며 넋을 놓는 이유도 이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끔찍한 현실을 벗어나 아름다움이라는 판타지(fantasy)의 세계에 빠지는 행위야 말로 미자가 스스로를 구원하는 유일한 방편이었을지도 모르지요. 시를 쓰려는 미자의 노력은 지독한 현실의 무게를 지탱해내기 위한 그녀의 필사적인 자구책이었으리라 생각해요.
미자가 현실과 걸맞지 않은 화려한 모자와 의복을 고집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되네요. 미자는 꽃무늬가 가득한 아름다운 패션을 통해 이 동정 없는 세상에 서럽게 저항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난 끝까지 세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고야 말겠어’하는 비장한 심정으로 말이지요. 그러고 보니 ‘미자’란 이름에도 소중한 뜻이 숨어 있었음을 알게 되네요. 미자, 아름다울 ‘미(美)’에 사람 ‘자(者)’, 즉 ‘아름다운 사람’이란 뜻이었네요. 미자는 추한 현실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야 하는 숙명을 이행하는 영혼의 순교자라고도 할 수 있겠어요. 현실이 고통스러울수록 더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갈구하면서 현실에 거칠게 저항하려 했으니까요.
시를 쓰려는 미자의 행위는 아름다움을 원하는 행위인 동시에 손자를 대신해 그 업(業)을 짊어지는 속죄행위이기도 해요. 미자는 들녘의 꽃과 나무를 관찰하는 마음으로 피해소녀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어요. 소녀가 뛰어내린 다리에 가보고, 소녀가 성폭행 당했던 으슥한 학교 과학실에 직접 가 보면서 미자는 소녀 자신이 되려하는 고통을 자처했던 것이지요. 죽은 소녀의 마음이 되는 것, 소녀의 고통을 고스란히(어쩌면 더 극심하게) 느끼는 것, 그래서 소녀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는 것만이 진정한 속죄요, 시(詩)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영화 마지막 장면이 우리의 마음에 더욱 오래 남아있는 건지도 몰라요. 미자의 영혼의 목소리를 통해 한줄 한줄 옮겨지던 그녀의 시 ‘아네스의 노래’가 어느 순간 피해소녀 아네스의 목소리로 바뀌어 읽혀지니 말이지요. 그래요. 미자는, 아네스는 이 순간 하나가 된 거예요. 그들은 아름다움을 찾았고, 구원을 얻었어요. 이 시를 통해서.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랫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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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