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체력을 위하여… 대표팀 선수들은 하루 8차례 꼬박꼬박 약을 섭취해야 한다. 비타민과 단백질 성분으로 구성된 종합 영양제다. 대표팀 스태프가 선수들이 훈련 뒤 섭취할 음료를 준비하고 있다. 노이슈티프트(오스트리아)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했다.
그러나 2010남아공월드컵 16강 진출을 노리는 허정무호에 이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남아공 입성에 앞서 오스트리아 노이슈티프트에 전훈 캠프를 차린 대표팀은 대한축구협회와 현지 교민회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부족함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물론 내내 반복되는 뻔한 스케줄과 단조로운 시간은 꽤 큰 고역이긴 하지만 선수들은 거듭된 해외 원정으로 단련돼 있어 별 무리 없이 잘 버텨내고 있다. 태극전사들의 숨겨진 24시를 공개한다.
노이슈티프트는 환상적인 환경에 자리 잡고 있다. 인구 13만 명이 거주하는 인스부르크 인근에 위치한 이곳은 80여 개의 만년설 지역이 있어 연중 내내 스키 여행객을 볼 수 있다. 얼핏 평지처럼 느껴져도 1200m 고지대에 위치하고, 3000m 이상 봉우리도 3곳이나 된다.
오스트리아가 괜히 스키 강국이 아님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숙소도 최상급이다. 선수단이 묵는 노이슈티프트 유일의 오성급 야크트호프 호텔은 실내·외 수영장과 스파, 사우나, 마사지 숍, 테니스장과 헬스장 등이 마련돼 다양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2008유럽선수권을 석권한 스페인도 노이슈티프트에 캠프를 차렸고, 역시 이곳에 묵었다.
하루 숙박료도 평소 원정에 비해 훨씬 많이 소요됐다는 후문이다.
무엇보다 룸메이트에 시선이 쏠린다. 일본 원정에 앞서 파주NFC에서 국내 훈련을 했을 때는 1인1실을 원칙으로 삼았으나 오스트리아 캠프에서는 2인1실을 마련했다. 허 감독은 “크게 의미는 없다”고 강조했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포지션, 같은 위치에 따라 함께 엮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7시 일어나 미팅·비디오분석 … 오후 5시 훈련
취침시간전 까지 단백질·비타민 등 8차례 섭취
같은 포지션 선수끼리 2인 1실 룸메이트 배정
자전거·산보·게임… 휴식땐 사생활 간섭 안해
○훈련 & ‘얘들아, 약 먹어야지!’
일과는 단순하다. 오전 7시에 기상한 뒤 8∼9시 사이에 자율적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 미팅이나 비디오 분석 등이 없으면 통상 휴식이 이어지며 오후 1시를 전후해 점심식사를 한다. 오후 5시에 한 시간 반에서 길게는 2시간 가까이 공식 훈련이 진행되며 저녁 식사는 오후 7시에 이뤄진다. 취침은 자율적으로 이뤄지지만 대개 오후 10시께 잠자리에 드는 경우가 가장 많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여기에 ‘약 복용’ 시간이 추가됐다는 사실. 기상과 동시에 시작해 취침 직전까지 하루 8차례 약을 섭취해야 한다. 선수들은 피지컬 트레이너 레이몬드 베르하이옌의 건의에 따라 영국 맨체스터의 모 업체가 제조한 종합 영양제를 타임 테이블에 맞춰 복용한다.
맛은 의외로 단순하다. 분말을 물에 탔을 때, 드러나는 색깔에 따라 맛이 다르다. 즉, 약간 분홍빛을 띠면 딸기 맛이고 짙은 갈색 빛이 감돌면 커피 혹은 코코아 향이 난다고 한다. 선수들 외에 섭취한 적이 없는 약물의 맛을 본 스태프는 협회 김주성 국제부장이 유일하다고.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선수들은 각자 기호에 맞춰 보약을 섭취했고, 또 식사를 전후로 출출할 때 과일이나 빵 등 가벼운 간식들을 먹었으나 영양제가 생기면서 굳이 보약을 챙겨먹는 경우는 없어졌다고 한다.
○휴식 & 식사
철저한 휴식도 대표팀 내 주요 일과 중 하나다. 허 감독은 “휴식도 훈련의 일부”라며 일부 공식적인 일정이 아니면 결코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하든지 개인 의사에 맡겨두고 간섭하는 경우가 없다.
워낙 일과가 단순하다보니 휴식 시간이 많다. 일단 선수들은 호텔 시설과 주변 환경을 최대한 만끽한다. 실외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자전거를 대여해 산보를 나서고, 일부는 헬스장을 찾아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을 단련한다.
물론 ‘방콕’도 빼놓을 수 없다. 이도저도 싫으면 잠을 청하거나 준비해온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노트북으로 인터넷 서핑을 하며 미니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친구, 지인들과 메신저로 안부를 묻기도 한다. 영화와 외화 시리즈, 버라이어티 및 코미디를 다운받아 시청한다.
휴대용 게임기도 요즘 선수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꼽히는데 역시 직업이 직업인지라 축구 게임이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한다.
TV는 스포츠 프로그램까지 모두 독일어로 나오기 때문에 이를 시청하는 선수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차두리가 유일하다.
식사 메뉴도 대단히 훌륭하다. 서양식으로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제외하면 중식과 석식은 한식이 주를 이룬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는 물론, 꽃게탕 등 각종 전골류도 빠짐없이 테이블에 등장한다. 쌀과 김치 등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공수해왔고, 몇몇 밑반찬들은 국내에서 직접 가져왔다.
육류와 어류도 매끼 나와 선수단의 까다로운 입맛을 충족시키고 있다.
일부에서는 ‘달걀(알 깐다)’과 ‘미역(미끄러진다)’ 등을 징크스를 피하기 위해 먹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지만 실제로 선수들은 계란으로 만든 음식을 좋아한다는 게 협회 관계자의 전언이다.
노이슈티프트(오스트리아)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