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 평가’로 혼란 가중… ‘세계경제 파수꾼’ 먹칠평가사-업체 결탁 의혹도… 각국 감독시스템 강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0월 3대 국제신용평가회사의 책임자들이 미국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선서를 하고 있다. 기업과 국가의 신용도를 평가하는 국제신용평가사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최근 남유럽 재정위기를 일으킨 주범 중 하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먼저 국제신용평가회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볼까요?
국제신용평가회사는 기업과 국가의 신용도를 평가하는 회사입니다. 현재 미국의 무디스와 S&P, 영국의 피치 등 3대 신용평가회사가 전 세계 신용평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죠.
평가가 부정확하다 보니 미리 위험을 파악하지 못하고 문제가 터진 뒤에야 등급을 떨어뜨려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최근 그리스가 유로존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했음에도 S&P는 오히려 그리스 신용등급을 정크본드(투기등급 채권)로 낮춰 그리스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1997년 한국 외환위기 당시에도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순식간에 떨어뜨려 외국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계기를 제공했죠.
아시아 등 신흥경제국의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최근 남유럽 국가들은 과도한 국가 부채와 적자를 안고 있지만 그리스를 제외한 포르투갈과 스페인 등의 국가신용등급은 아직까지 한국보다 높습니다.
전문가들은 신용평가사들의 영업 구조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신용평가사들은 평가를 받는 회사에서 수수료를 받습니다. 평가를 받는 회사가 고객이다 보니 고객을 유지하기 위해 평가가 무뎌지기 쉽습니다. ‘이해 상충’의 문제가 있는 것이죠.
문제는 국제신용평가사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음에도 이들을 규제하거나 평가할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기존에는 각국이 신용평가사들의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했고, 미국 정부는 신용평가사들 간의 과도한 경쟁이 오히려 공정성을 해친다며 무디스와 S&P의 독과점을 묵인해 왔습니다.
최근 국제신용평가사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면서 세계 각국은 나름대로 대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미국 상원은 채권평가위원회를 만들어 앞으로 신용평가사들에 정부가 업무를 할당하도록 했습니다. 금융회사와 신용평가사들의 결탁 고리를 끊겠다는 것이죠. 특히 신설되는 채권평가위원회의 절반은 투자자들로 채우겠다고 나섰습니다.
유럽연합(EU)은 자체적으로 신용평가기관을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EU는 S&P 등 신용평가회사들이 이번 그리스 사태를 악화시켰다면서 공공연히 불만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유럽 국가신용등급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신용평가기관을 설립하는 방안을 협의 중입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