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KIA 외국인투수 라이트는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사직구장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우와! 한국에도 이렇게 좋은 야구장이 있다니!” 두둑한 계약금과 연봉, 세심한 배려까지 한국프로야구는 라이트에게 기대 이상이었지만 광주구장의 ‘처참한’ 모습은 사실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모든 한국 야구장의 시설이 그 정도 수준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다 넓디넓은 사직의 천연잔디를 보는 순간 깜짝 놀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많은 지방구단 스카우트들은 외국인선수가 홈구장을 처음 찾을 때 민망함을 느낀다고 한다. 한국야구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그 인프라는 부끄러울 정도다.
선동열 감독은 시즌 초 광주경기에서 쌀쌀한 날씨에도 경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관중석을 지키고 있는 야구팬들을 보며 “저 좁은 의자에서 추위, 더위와 싸우며 몇 시간씩 불편하게 앉아 야구를 보는 관중들을 보면 절로 죄송한 마음밖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40대 후반이 된 감독이 10대 때부터 뛰었던 야구장은 질퍽질퍽한 천연잔디가 딱딱한 콘크리트를 가린 인조잔디로 바뀐 점을 빼면 그대로였다.
지방선거가 끝났다. 그리고 당락이 가려졌다. 대구와 광주, 부산의 광역단체장 당선자는 야구장 신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 중 대구와 광주가 가장 구체적이다.
김범일 현 시장이 당선된 대구의 행보도 빠르다. 연고구단 삼성과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야구장신축을 준비해왔다. 현 시장이 재선에 성공하며 새 야구장 프로젝트는 더 큰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많은 광주와 대구 시민들은 그동안 “선거 때마다 야구장 하나씩 짓는다고 했으니까 지금 4∼5개는 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며 깊은 불신을 보였다.
그러나 딱 이번 한번만 더 믿어보면 어떨까.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심의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확인한 참이니 말이다.
ru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