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와 환율은 선후(先後)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밀접하게 맞물려 있지만 굳이 이해당사자의 수를 따진다면 주가 쪽이 훨씬 많을 것이다. 주식 투자가 보편화됐고 ‘1가구 1펀드’로 상징되는 펀드 대중화 시대에 주가의 변동은 개인의 자산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럼 정부 당국자들은 금융시장이 출렁일 때 어떤 쪽의 움직임에 더 민감할까. 환율 추이,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달러가 들어오고 나가는 흐름에 더 많은 신경이 쓰인다고 털어놓는다. 주식 투자자들은 서운할지 모르지만 한국 경제의 위기경험사를 떠올려보면 이런 조바심도 무리는 아니다.
한국이 경제위기에 빠졌거나, 위기설로 분위기가 흉흉했을 때는 어김없이 달러가 화근이었다. 우리가 자초했던 1997년 외환위기는 물론 미국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터진 2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한국 경제의 안위(安危)를 가른 평가척도는 달러였다. 한국이 세계 6위의 외환보유액을 쌓아놓고도 좀처럼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달러의 변심이 그만큼 무섭기 때문이다.
자국의 경제발전 단계에 맞춰 외환시장에 일정한 규제를 가하는 것은 ‘환율주권론’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국제적으로 용인되는 해당국 정부의 고유권한이다. 투기세력의 공격으로부터 경제시스템을 지켜내기 위한 자구책의 성격도 있다. 하지만 달러를 믿지 못하겠다고 해서 개방 기조를 포기하고 갑자기 규제로 돌아서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이 외환거래 자유화 조치를 취한 것은 외환위기를 겪고 난 뒤인 10여년 전부터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투자와 예금이 허용됐고 내국인의 해외송금 규제도 많이 풀렸다. 외국자본이 국내로 들어오는 물꼬를 트고 시장의 규모를 키워 선진 금융기법을 배운다는 취지였다. 상황이 바뀌면 당연히 정책도 바뀌어야 하지만 환율의 쏠림 현상이 위험한 것처럼 외환정책도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직 한국은 장기적 안목을 가진 외국자본을 충분히 유치하지 못했고 금융시장의 경쟁력은 여전히 미흡한 상태다. 외환 규제의 칼을 다른 나라보다 먼저 뽑아들면 건전한 달러마저 한국을 외면하고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릴 수도 있다. 달러의 배신에 번번이 데인 아픈 기억 탓에 달러를 믿지 못하지만 그래도 달러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 경제의 숙명이다.
박원재 경제부장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