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제전’ 개정판 내는 소설가 김원일 씨
대표작 ‘불의 제전’을 27년 만에 개작한 김원일 씨는 “내 문학 자체가 온통 분단문제, 우리가 겪었던 이데올로기 갈등을 다뤘지만 무엇보다 추구하려 했던 것은 가혹한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끈기있게 살아온 민초들의 삶”이라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김 씨는 ‘어둠의 혼’ ‘노을’ ‘마당 깊은 집’ 등 일평생 전쟁과 분단이라는 역사의 아픔을 문학을 통해 천착해온 한국 분단문학의 대표 작가다. 전쟁이 일어나던 당시 1950년 경남 진영과 서울 등지를 주무대로 6·25전쟁 과정을 상세하게 그려낸 ‘불의 제전’(1983년)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총체적이고 밀도 있게 동족상잔의 비극을 그린 수작으로 꼽힌다. 그가 최근 이 작품의 개작을 마쳤다.
작가는 “7권으로 된 원작을 5권 분량으로 덜어냈고 산만한 묘사, 부정확한 문장을 다듬었다. 정리 정돈이 훨씬 잘돼 목욕재계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원일문학전집’을 출간 중인 강출판사에서 18일경 개정판을 낼 예정이다. 그는 2002년 ‘늘푸른 소나무’(1993년) 개정판을 출간한 적이 있다.
6·25 60년에 개정해 소회 남달라
그는 “여덟 살 때 6·25를 처음 겪은 이후 지금까지 1950년대 시점으로 소설을 쓰고 있으니 어쩌면 내 인생이 거의 다 그 시대 문제에 매달려 있는 셈”이라고 했다. 특히 ‘불의 제전’은 전쟁 당시 남로당 간부였으며 가족과 헤어져 단신으로 월북한 작가의 아버지를 중심으로 유년시절, 가족사의 애환을 담아낸 자전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여기선 정말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을 그렸습니다. (작품 속 ‘조민세’란 등장인물로 나온다) 당시엔 쓰지 못했지만 개정판 서문에는 ‘이 책을 6·25전쟁에서 희생된 많은 영혼들과 그 시대 가파르게 현실 가운데 서서 살았던 아버지께 바친다’는 내용을 넣었어요.”
인터뷰 도중 작가는 탁자 위에 올려둔 6·25전쟁 당시 사진집을 보여줬다. 동족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참혹한 장면을 한 장씩 넘겨가며 사진 속 정황, 당시의 체험을 설명하던 그는 전쟁의 상처와 비극에 무관심한 세태에 대해 우려감을 내비쳤다.
“우리는 아직 분단 상태이고 휴전선이 있습니다. 자라나는 이들은 의무복무를 해야 하죠. 젊은 세대와는 거리가 먼 것 같지만 사실 6·25전쟁과 분단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론 요즘 작가들에게 현장성 강한 무거운 주제로 글을 쓰라고 강요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소설가 이문열 임철우 씨 정도까지 명맥을 유지한 이후로는 전쟁과 분단을 다룬 문학이 역사 속에 편입되고 전설이 돼버린 감이 있어요.”
‘내 몫은 결국 그때’란 노작가의 마지막 말에 그의 문학 인생이 압축된 듯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