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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이맛!] ‘콩국수-김치말이국수’

입력 | 2010-06-11 03:00:00

슴슴하게… 칼칼하게… 월드컵열기 식히는 별미




《‘다음 경기가 늘 가장 어렵다. 오, 아니다./가장 어려운 것은 경기가 없을 때다. 경기가 없다./그래도 경기는 90분 동안 계속된다./공이 없다. 그래도 공은 둥글다./그라운드가 없다. 그래도 진실은 그곳에 있다./그래, 그런 것 같다./종료 휘슬이 불면 경기는 끝난 것이다.’

<페테르 에스테르하지의 ‘어느 늙은 축구선수의 노래’ 전문>》



푸하하하! 축구만 생각하면 발바닥이 근질거린다. 냅다 내지르고 싶다. 저지르고 싶다. 고양이처럼 둥근 것만 보면 살살 굴리고 싶다. 투욱∼! 툭! 건드려보고 싶다. 아니 길거리 빈 깡통이면 어떤가. “쨍그랑!” 남의 집 유리창이 깨지도록 내차고 싶다. 하지만 공이 없다. 운동장도 없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적막강산. 시간은 자꾸만 흐른다. 그러다가 문득 “삐익∼” 종료 휘슬이 길게 울린다.

월드컵은 배가 고프다. 소리지르다 보면 늘 배가 출출하다. 몸은 이미 땀에 젖어 쉰 냄새가 난다. 컵라면은 뜨겁다. 뭔가 시원한 것이 먹고 싶다. 얼음 동동 뜬 김치말이국수가 딱이다. 만들기도 간단하다. 다시마멸치육수와 김칫국물을 반반 섞고, 거기에 삶은 소면을 찬물에 헹궈 넣으면 된다. 국수 위엔 고소한 통깨와 오이 채 그리고 들큼한 김치 몇 가닥 올리면 금상첨화다. 이것도 귀찮다면 살짝 얼린 열무김치나 동치미국물에 삶은 국수를 넣어 먹어도 그만이다. 국물이 흥건한 배추김치를 얼린 뒤, 거기에 국수를 말아 먹은들 누가 뭐라 할 사람 없다. 아슴아슴 실눈을 깜박거리며, 김치말이국수의 아삭거리는 살얼음을 잇몸으로 지그시 눅이며 먹는 맛이란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온 살갗의 세포들이 우우 문을 열고, 잔물결을 치며 저릿저릿 거린다.

축구공은 생물이다. 어디든 자유롭게 움직인다. 음식도 생물이다. 원칙과 정형이 있을 수 없다. 사람 입맛에 따라 요리법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6·25전쟁 때 북한에서 내려온 어르신들은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삶은 국수를 만 뒤, 여기에 식초와 설탕 그리고 고춧가루를 쳐서 드시는 경우가 많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눈나무집(02-739-6742) 김치말이국수는 요즘 서울사람들 입맛에 눈높이를 맞춘 것이다. 시원하고 새콤달콤한 맛에 젊은이들의 발길이 붐빈다. 국수대신 찬밥을 말아먹으면 바로 ‘김치말이밥’이다. 서울 중구 무교동의 리북손만두(02-776-7350)가 이름났다. 사골을 우려낸 국물과 김칫국에 찬밥을 말고 오이채와 얼음을 띄워낸다. 참기름도 몇 방울 쳐서 고소하면서도 시원 담백하다. 물론 김치말이국수도 있다.

한여름 밤 월드컵 열기는 뜨겁다. 골은 쉽게 터지지 않는다. “아아∼” 안타까운 탄식의 소리만 계속된다. 속이 바싹바싹 탄다. 입술이 마른다. 골은 음식의 소금이다. 소금 없는 음식은 밍밍하다. 축구장에서의 0-0은 관중모독이다. ‘하품하는 두 입’이다.

‘경기는 90분 동안/계속된다. 90분은/얼마나 길까? 그것은/함께하는 사람들이 없다면/얼마나 길까? 그것을/누가 과연 참을 수 있을까?’ <일제 아이힝거>



콩국수는 슴슴하다. 은근하게 맛이 깊다. 그만큼 김치말이국수보다 손이 많이 간다. 우선 콩을 반나절 넘게 불려 냄비에 넣은 후, 자작하게 물을 부어서 삶는다. 삶은 콩은 찬물에 헹군 뒤 껍데기를 없앤다. 그 다음 찬물에 헹군 콩을 맷돌이나 믹서기에 조금씩 물을 부으면서 곱게 간다. 땅콩도 조금 넣어서 갈아주면 고소하고 맛있다. 만들어진 콩국물은 냉장고에 보관한다.

국수는 밀가루에 콩국물을 부어 고루 반죽한 뒤 칼국수 면처럼 고루 썬다. 그 다음 팔팔 끓는 물에 넣어 삶은 뒤 찬물에 헹궈서 물기를 빼주면 된다. 콩국수면에 콩국물을 붓고 그 위에 오이채, 참깨, 흑임자, 견과류 얼음 등을 얹어 먹는다. 간은 소금으로 한다. 콩국수는 덜 삶으면 비린내가 나고, 너무 오래 삶으면 퀴퀴한 메주냄새가 난다. 얼마나 알맞게 삶느냐가 맛의 열쇠다.

콩국수는 밑반찬이 중요하다. 슴슴한 콩국수 맛을 절묘하게 보완해 준다. 새콤달콤한 오이소박이나 열무김치 혹은 시큼한 김치가 안성맞춤이다. 깍두기나 갓김치 부추김치도 마찬가지다.

요즘 젊은 가정에서 콩을 삶아 콩국물을 내는 집은 거의 없다. 콩국수면도 일일이 밀가루반죽을 해서 만들지 않는다. 시장에 나가면 콩국물과 콩국수면을 쉽게 살 수 있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보다야 못하겠지만 미리 사두었다가 밤에 월드컵축구경기 볼 때 간단하게 만들어 먹는 것도 한 방법이다.

서울시청 앞 진주회관(02-753-5388), 중구 주교동의 강산옥(02-2273-1591), 여의도백화점 지하1층 진주집(02-780-6108) 등 장안의 내로라하는 전문 집에서 미리 사서 냉장고에 보관하는 방법도 있다.

월드컵은 전쟁인가 아니면 놀이인가. 한여름 밤, 전 지구는 달아오른다. 사람들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발을 구른다. 나팔을 불고, 춤을 추고, 울고 웃는다. 타는 목마름으로 “골! 골! 골!”을 외친다. 축구에서의 골은 한 송이 꽃이다. 목련꽃이요, 장미꽃이요, 모란꽃이다. 그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하여 선수들은 마지막 땀 한 방울까지 쏟아 붓는다. 관중은 목이 터지도록, 손바닥이 부르틀 때까지 응원을 보낸다.

김치말이국수는 칼칼하다. ‘원 샷 원 킬’의 박주영 같다. 바람처럼 휘젓는 박지성 같다. 차돌같이 단단한 북한축구 같다. 콩국수는 구수하다. 연둣빛 순수한 맛이 난다. 우지끈! 딱! 온몸을 던지는 한국의 된장축구 같다. 돈에 물들지 않는 북한축구 같다.



“축구공은 어느 누군가가 오기를 바라는 쪽으로는 절대 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골키퍼를 하면서 배웠다.” <1930년 아젤대학교 축구팀 골키퍼로 활약한 알베르 카뮈>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