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보 1993∼2010년 사형수 살인 범죄유형 분석
여행객 살해 ‘보성 어부’ 사형 어제 확정… 사형수 61명으로
사형수 1인당 평균 3.4명 살해
유영철 20명-정남규 13명 살인
남녀 여행객 4명을 바다에 빠뜨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어부 오종근(72)의 사형이 10일 확정됐다. 이는 2월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5(합헌) 대 4(위헌)의 의견으로 사형제에 합헌 결정을 내린 뒤 처음 나온 사형 확정 판결이다. 오종근은 2007년 8월 전남 보성군으로 여행 온 10대 남녀 2명을 자신의 배에 태운 뒤 여성을 성추행하기 위해 남자를 먼저 바다로 밀어 숨지게 하고 저항하는 여성도 빠뜨려 죽게 했다. 그는 같은 해 9월에도 자신의 배에 탄 여대생 2명을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
동아일보 사회부 법조팀은 현존하는 사형수 61명의 판결문을 모두 입수한 뒤 경찰대 표창원 교수(범죄심리학)의 도움을 받아 사형수의 범죄 유형을 △보복·분노형 △사이코패스 △성욕형 △이욕형(금전적 이익) △조직형 등 5가지로 분류했다. 이를 1990년대 후반(1993∼1999년), 2000년대 초반(2000∼2004년), 2000년대 후반(2005∼2010년) 등 세 시기로 나눠 변화 추이를 살폈다. 시간이 흐를수록 범죄는 더욱 잔인해졌고 살해 피해자 수도 늘었다. 범죄 유형도 보복에서 성욕과 이욕을 거쳐 사이코패스형으로 진화하는 양상을 보였다.
○ ‘보복’에서 ‘이익·성욕’으로
2002년 3월 경기 양평군 중미산 휴양림 방갈로 안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났다. 까맣게 타버린 방갈로 안에서 부부와 아들딸로 보이는 4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빚에 쪼들린 가족의 동반 자살로 여겼던 경찰은 ‘자살할 이유가 없다’는 주변 진술을 토대로 수사를 확대했고 용의자 ‘정 교수’를 검거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미국 벤처사업가로 위장한 정운하는 피해자에게 투자금 명목으로 2억 원을 가로챈 뒤 사기 행각이 들통날까 봐 이 부부와 자녀를 망치와 칼로 살해한 뒤 방갈로에 불을 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2000년대 초반 사형이 확정된 사형수 25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13명(52%)이 금전적 이익을 얻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 9명(36%)은 성욕을 채우기 위해 사람을 살해했다. 이는 1990년대 후반 분노를 참지 못해 범행을 저지른 사형수가 많았던 것과 차이가 있다.
김중호는 2002년 재혼한 아내가 데려온 딸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하다 구속됐다. “더는 자신과 아이를 괴롭히지 말아 달라”는 조건을 내걸며 아내가 고소를 취하해 풀려난 그는 곧바로 아내와 의붓딸, 자신과 아내 사이에 낳은 두 자녀를 망치와 가위 등으로 살해했다.
○ 사이코패스 급격히 늘어
2000년 10월 25일 전북 고창군의 한 마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 사라졌다. 오후 6시 10분에 강아지 인형 두 개를 산 뒤 친구와 나눠 들고 헤어졌다던 아이는 밤이 깊도록 돌아올 줄 몰랐다. 경찰이 추적에 나섰지만 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는 길가 야산 위 양지바른 무덤 위에 발가벗겨진 채 십자가 형태로 누워 숨져 있었다. 경찰은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자국과 모발, 체모를 발견했지만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55일 뒤 귀가하던 여고생(17)과 남동생(13)이 동시에 사라졌다. 남동생은 운동화 끈으로 손이 묶이고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됐다. 여고생은 소나무 밑동에 손이 묶인 채 치마가 걷어 올려져 얼굴을 덮었다.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었고 온몸에 흉기에 찔린 상처가 있었다. 경찰은 주변 민가를 수색한 끝에 용의자 김해선을 검거했다.
사형수 61명이 살해한 피해자는 모두 210명. 사형수 한 명에게 평균 3.4명이 희생된 셈이다. 유영철이 20명을 살해했고, 강원 원주시 왕국회관에 불을 지른 원언식이 15명의 희생자를 냈다. 부녀자와 초등학생 13명을 연쇄 살해한 정남규는 지난해 말 구치소 안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사형수 1인당 살해 피해자 수는 증가 추세를 보였다. 2000년대 후반 12명의 사형수에게 희생된 피해자는 67명(평균 5.6명)이었다.
한편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3월 경북 청송교도소에 사형집행시설을 설치하고, 분산 수용돼 있는 사형수 상당수를 이곳으로 옮겨 격리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이 방안을 중장기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 살인의 추억? 7명은 출소후 또 살인
1989년 살인죄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이순철은 10년 만에 가석방돼 사회로 돌아왔다. 그는 어린시절 소년원에서 만난 친구들과 ‘영웅파’라는 조직을 결성해 두목이 됐다. 집 근처 편의점 앞에서 조직원들과 어울려 맥주를 마시던 그는 조직원 곽모 씨가 불손한 행동을 하자 “싸가지가 없다”며 합숙소로 끌고 갔다. 야구방망이로 난타당한 곽 씨가 정신을 잃자 이순철은 범행을 숨기기 위해 곽 씨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 그는 곽 씨의 시신을 수백 개로 토막 낸 뒤 “범행을 누설하는 자는 죽인다”며 조직원들에게 장기 일부를 나눠 먹게 했다. 이순철이 가석방된 지 5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순철은 살인죄로 장기 복역한 뒤 가석방됐지만 사회에 나온 뒤 그의 범행은 더욱 대담하고 잔인해졌다. 살인죄로 복역한 뒤 출소해 또다시 살인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살인누범(殺人累犯)’이라고 부른다. 사형수 61명 가운데 7명(11.5%)이 살인누범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교도소에서 복역 기간을 마치고 나오거나 가석방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또다시 살인을 저질렀다. 모범수나 장기수라는 이유로 감형되거나 가석방됐지만 범죄 충동은 사라지지 않은 셈이다.
살인누범 발생 원인은 교정 단계에서 재범의 위험성을 미리 파악하지 못했거나, 출소 후 보호관찰 등 범죄 재발을 막기 위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장기 복역 후 출소한 이들이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지역의 한 판사는 “법원이 재범 위험성이 높은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는 전자발찌 장기부착 명령을 내리는 등 양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교정 단계에서도 재범 방지 대책을 적극적으로 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