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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일과 삶]박동훈 폭스바겐코리아 사장… “英美 스릴러 소설에 푹빠져 삽니다”

입력 | 2010-06-12 03:00:00

독서 통한 간접경험 경영에 도움
책 고를때 저자-서평 참고하듯
車도 브랜드-고객관리가 중요




“톰 클랜시, 마이클 크라이턴, 댄 브라운입니다.”

11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사무실에서 만난 박동훈 폭스바겐코리아 사장(58)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하루도 책을 안 읽는 날이 없을 정도로 다독(多讀)하는 것으로 알려진 박 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영미권의 스릴러 소설가 3명을 꼽을 줄은 몰랐다.

○ ‘스릴러 소설로 쌓인 피로 풀어’


박동훈 폭스바겐코리아 사장이 11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사무실에서 전자책(e북) 리더기인 킨들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박 사장의 킨들에는 톰 클랜시 소설을 포함해 19권의 영어 원서가 들어 있었다. 홍진환 기자

인터뷰하러 온 기자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을 물어보면 경영이나 인문학 서적, 역사책 등을 꼽는 것이 ‘관행’ 아니었던가. 스릴러 장르가 순수 문학에 비해 평가절하되는 한국 출판계의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놀라움은 더 컸다. 톰 클랜시는 ‘붉은 10월’ ‘패트리엇 게임’ 등으로 유명한 첩보 및 군사 분야 소설가, 마이클 크라이턴은 ‘쥐라기 공원’ ‘넥스트’ 등을 쓴 ‘테크노 스릴러’의 거장, 댄 브라운은 영화로도 유명한 ‘다빈치 코드’의 작가다.

‘대중소설 작가 세 사람을 꼽을 줄은 미처 몰랐다’고 털어놓자 박 사장은 “그 세 사람의 책은 팔린 양으로 보면 분명 대중적이지만 그렇다고 저자들의 수준이 대중적이지는 않다”고 말했다. 책들을 읽다 보면 국제 정치나 최신 과학이론에 해박한 전문가의 내공이 느껴진다는 것. 실제로 마이클 크라이턴은 하버드대 의대 출신이고, 톰 클랜시의 책 중 상당수는 미국의 사관학교에서 필독서로 지정됐을 정도로 전문성에서 인정받고 있다.

박 사장은 “톰 클랜시와 마이클 크라이턴 등은 뛰어난 기술력으로 고급 제품을 만들어 대중을 사로잡는 ‘양산 브랜드’”라며 “그게 바로 폴크스바겐 아니냐”고 말하며 웃었다. 다만, 댄 브라운의 경우에는 독자를 끌어들이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내공’은 다른 두 사람보다 떨어지는 것 같다고.

박 사장이 스릴러 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것은 1978∼1986년 한진건설 유럽주재원으로 일했을 때부터다. 한국에서 가져간 읽을거리가 다 떨어지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 영어 서적을 파는 인근 책방에서 원서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드니 셀던으로 시작해, 영화 ‘본 아이덴티티’의 원작자인 첩보 소설가 로버트 러들럼에게 빠져들었고, ‘자칼의 날’로 유명한 프레드릭 포사이스도 즐겨 읽었다고 한다. 톰 클랜시의 소설은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것까지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모두 읽었을 정도로 열혈 팬이다. 기자가 읽어본 톰 클랜시의 소설을 몇 권 언급하자 박 사장은 톰 클랜시가 다른 작가들과 공동 작업으로 낸 책들의 세계관까지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박 사장이 스릴러 소설을 즐기는 것은 물론 1차적으로는 재미 때문이다. 쌓인 스트레스를 술로 풀기보다는 흥미진진한 책 속 이야기에 푹 빠져 피로를 잊어버리는 게 그의 스타일이다. 박 사장은 거기에 더해 “스릴러 소설을 읽는 게 경영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며 “있을 법한 배경과 그럴듯한 동기 속에서 점점 커지는 긴장을 사실적인 인물들이 해결해 가는 과정을 간접 체험하는 게 곧 위기관리를 배우는 것 아니겠냐”고 주장했다.

○ ‘책 고를 때처럼 차도 고른다’

그래서 스릴러라고 무조건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인물이나 배경 등이 그럴듯하지 않으면 흥미를 잃는다고. 한국 소설가 중에서 최인호 씨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도 작가의 발품으로 고증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최 씨를 우연히 한 식당에서 만나 팬임을 밝힌 뒤 서로 연락하는 사이가 됐고, 최 씨는 박 사장의 요청으로 폴크스바겐의 고급 세단 ‘페이튼’의 홍보 대사를 맡기도 했다. 마이클 크라이턴의 소설을 읽을 때는 저자가 자기 소설에 하나씩 소개하는 최신 과학 이론을 접하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했다. “물론 수박 겉핥기이긴 할 테지만 우리 같은 일반 독자들이 그런 학설을 어디 가서 들어보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박 사장은 “줄거리가 똑같아도 영화는 책만큼 재미있지 않더라”라며 “스릴러 소설은 많이 읽지만 영화화된 작품은 별로 안 본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히트한 영화 ‘본 아이덴티티’도 원작 소설과 분위기나 주인공에 대한 묘사가 너무 달라 실망했다고 한다.

요즘은 전자책(e북)으로 책을 읽고 있다. 박 사장이 보여준 킨들 화면에는 톰 클랜시의 소설 3권을 포함해 영어 원서 10여 권의 목록이 있었다. ‘은퇴 뒤에라도 직접 소설을 써보실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책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닌 것 같다. 제대로 된 책을 쓰려면 몸과 마음을 다 불살라야 할 텐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다만 누군가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다룬 ‘대망’이나 중국의 삼국지처럼 광개토대왕의 얘기를 소설로 써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폭스바겐코리아는 국내 수입차시장에서 후발 업체이면서도 최근 몇 년 동안 눈부신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박 사장은 회사의 당면 과제에 대해 “브랜드 이미지를 더 높이고, 늘어나는 판매량에 맞춰 정비 역량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내가 책을 고를 때 우선 저자의 이름을 보고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참고하는데, 소비자들이 차를 고를 때도 마찬가지로 브랜드와 고객 관리를 생각하지 않겠나”라고 설명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박동훈

1952년생
―중앙고, 인하대 건축공학과 졸업
―1978∼1986년 한진건설 유럽주재원
―1989∼1994년 한진건설 볼보 사업부장
―1994∼1997년 한진건설 기획실장
―2001∼2003년 고진모터임포트 부사장
―2005년∼ 현재 폭스바겐코리아 사장
―2008년∼ 현재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