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물류 전문 회사인 글로비스는 올 1분기(1∼3월)에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매출액의 약 90%는 그룹 계열사 등 특수관계인과의 거래를 통해 발생했다. 일각에서는 현대·기아차가 경영권 승계 작업을 염두에 두고 그룹 차원에서 물량 몰아주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경영권 승계 포석?… 현대차 “원가절감 목적”
○ 그룹 ‘중간도매상’ 역할
13일 현대·기아차그룹에 따르면 글로비스의 올 1분기 매출액 1조2562억 원 중 그룹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해 발생한 매출액은 89.96%인 1조1301억 원에 이른다. 글로비스 매출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계열사는 현대차로 해외법인을 포함해 4809억 원이었고, 그 다음은 기아차로 3740억 원(해외법인 포함)에 이른다. 현대제철도 1138억 원으로 1000억 원이 넘었다. 이 덕분에 글로비스의 1분기 매출,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은 모두 사상 최대였다.
현대·기아차 해외공장 생산량이 글로비스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글로비스의 독특한 사업구조 때문이다. 글로비스는 현대·기아차의 생산 차량이나 부품을 실어 나르는 물류전문기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매출액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자동차 부품 판매다.
현대차와 기아차 해외공장에서는 현지에 동반 진출한 협력회사들이 공급하지 않는 부품을 글로비스를 통해 국내에서 조달한다. 이 과정에서 글로비스는 단순히 부품 운송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부품을 구입해 현대·기아차 해외 공장에 판매를 하는 ‘중간 도매상’ 역할을 하면서 이윤을 남기고 있다. 유통 단계를 단순화해서 유통 비용을 줄이는 게 보통이지만 현대·기아차그룹은 글로비스라는 중간 도매상을 두고 유통 단계를 한 단계 더 늘리고 있는 것. 글로비스가 이렇게 올린 매출액이 1분기 전체 매출의 50%인 6347억 원에 이른다.
이 밖에 글로비스는 운송과 관련해 올해 계열사로부터 새로운 물량을 추가로 수주했다. 자동차 해상운송 업체인 유코카캐리어가 독점하던 현대·기아차의 완성차 수출 물량 중 20%를 올해부터 넘겨받은 것. 이 사업을 통해 글로비스는 1분기에 362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현대제철이 올해부터 고로를 가동하면서 제철 원재료를 수송하는 일도 시작했다. 글로비스는 지난해 현대제철과 올해부터 2030년까지 20년간 제철소 원료를 수송하는 장기 계약을 1조3400억 원에 체결했다. 올해 1분기에 제철원료 수송으로 올린 매출액은 516억 원이다.
○ 경영권 승계와 관련?
현대·기아차그룹의 글로비스 지원을 경영권 승계와 연관 지어서 해석하는 것은 이 회사의 지분구조 때문이다. 글로비스의 최대주주는 31.9%의 지분을 보유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고, 2대 주주는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20.3%)이다.
글로비스 매출이 증가하고 실적이 개선되면 주가가 상승해 경영권 승계 작업이 한결 수월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정 부회장이 글로비스 주식을 처분한 돈으로 현대·기아차그룹 지주 회사가 될 현대모비스 주식을 취득함으로써 이 회사의 최대 주주가 돼 그룹 경영권을 넘겨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모비스와 글로비스를 합병한 뒤 지주회사로 전환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글로비스의 주가가 비싸야 정 부회장 지분이 높아진다. 글로비스 주가는 실적호전과 최근 자동차 관련 기업의 주가 상승 등의 영향으로 올 2월 말 주당 9만5000원대에서 이달 11일 12만7500원으로 상승했다.
이에 대해 현대·기아차그룹 관계자는 “운송량이 늘어나면 원가절감이 되기 때문에 그룹 물류 계열사인 글로비스에 맡기는 것”이라며 “경영권 승계 작업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