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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끌수록 짐’ 판단… 靑 “자유투표” 수정안 사실상 포기

입력 | 2010-06-15 03:00:00


《(세종시 문제를) 더 이상 오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 관련 법안들은 이미 지난 3월에 제출되어 있으므로 국회가 이번 회기에 표결 처리해주시길 바랍니다. 정부는 국회가 표결로 내린 결정을 존중할 것입니다.》
수정안 철회 ‘출구전략’?
“백년대계 위해 추진했던것”

이명박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 집무실에서 TV와 라디오로 생방송된 제42차라디오·인터넷 연설을 통해 향후 국정운영 방향을 밝히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역사적 정당성은 부정 안해

野 “스스로 철회를”
제3의 수정론 나올 수도
靑 “부결땐 원안뿐” 선그어


이명박 대통령이 14일 세종시 문제 처리를 국회에 일임함에 따라 작년 9월 3일 정운찬 당시 국무총리 내정자의 ‘원안 처리 불가’ 발언을 계기로 본격화된 세종시 수정 논란이 9개월여 만에 최종 결말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 당론 결정→국회 상임위 통과→본회의 표결’이라는 기존 처리 방식 대신 곧바로 국회에서 표결로 처리해 줄 것을 제안함으로써 이 문제를 조기에 매듭짓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의 결정은 무엇보다 6·2지방선거에서 드러난 충청권 민심을 수용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광역단체장 세 곳을 모두 야당에 내준 만큼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붙일 명분과 동력이 소진된 상황이다.

청와대는 집권 후반기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권력 누수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차원에서도 세종시 문제의 조기 종결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작년 이후 여당이 각종 현안에 무기력하게 대응한 이면에는 세종시 문제로 촉발된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 간 계파 균열이 깔려 있었다. 이 대통령이 국정의 새 틀을 짜겠다고 선언한 만큼 내부 진영을 단속하고 당력을 결집하기 위한 방책으로 세종시 종결 카드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세종시 문제로) 국론 분열이 지속되고, 지역적 정치적 균열이 심화되는 것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수정안을 자진 철회하기보다 국회의 결정에 맡긴 것은 수정안 추진의 역사적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할 수 없다는 소신의 발로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해서, 그리고 지역발전을 위해 더 좋은 방향으로 수정을 추진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지금도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세종시 문제를 국회에 ‘턴키’로 넘겼지만 야당이 순순히 국회 표결에 응해줄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하루빨리 대통령 스스로 (수정안을) 철회하는 것이 옳다”며 국회 표결 처리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민주당은 2월에 국회에서 표결로 처리하자고 요구했다. 이제 와서 안 한다고 하면 민주당은 대통령 얘기는 무조건 반대하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우윤근 원내수석부대표는 2월 “세종시 논란을 3월 임시국회에서 종결해야 한다”며 야5당 공동 명의로 3월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또 “(자진 철회 대신 국회 표결을 요구한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이니 국회에 기록을 남기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훗날 수정안 추진이 역사적 재평가를 받을 때를 생각해서라도 반대파들의 책임을 기록으로 명기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청와대도 국회에서 세종시 수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음을 인식하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기도 하다. “국회 표결 때까지 의원들을 상대로 찬성표 확대를 위한 설득전을 벌일 것이냐”는 질문에 한 관계자는 “모두 당에 위임한 일”이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국회 표결처리 순서와 방식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친박계나 야당이 원안의 정부 부처 이전 내용을 고스란히 담은 채 추가로 혜택을 주는 ‘원안+알파(α)’안을 들고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원안+α’를 고수해 온 데다 충청권을 장악하고 있는 야당도 내심 이를 원하는 듯한 기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수정안이 표결에서 부결되면 원안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일단은 부정적인 견해다. 수정안이 무산된 상태에서 수정안에 담긴 기업에 대한 특혜 조치만을 원안에 얹어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 수정안 처리 어떻게 될까


1차 관문 국토위 수정 반대가 찬성의 2배… 위원장도 친박
본회의 직권상정 찬성 120표 vs 반대 160표로 부결될 듯


정부는 3월 23일 세종시 수정안을 뒷받침하는 5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수정안의 모법(母法)인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행복도시법) 개정안과 이를 뒷받침할 혁신도시건설·지원특별법, 산업입지개발법, 기업도시개발특별법,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다.

14일 현재 기획재정위원회에 넘어간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제외한 나머지 4개 법안은 국토해양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5개 법안이 일괄 처리돼야 세종시 수정안이 처리된다. 결국 가장 많은 법안이 계류 중인 국토위가 법안 처리의 1차 관문인 셈이다.

현재 국토위에서 수정안 관련 처리 여건은 좋지 않다. 18대 후반기 국회 원 구성으로 새로 상임위원장이 된 송광호 의원(충북 제천-단양)은 세종시 수정에 반대하는 친박(친박근혜)계 중진이다. 한나라당 간사도 중립이지만 친박 성향의 최구식 의원이다.

위원장과 간사가 회의 진행을 늦출 경우 세종시 수정법안은 첫 관문인 상임위에서 표류하게 된다. 정상적으로 상임위 표결 절차에 들어가도 세종시 수정안은 통과하기 어렵다. 법안이 부결되면 원안대로 시행된다.

동아일보의 분석에 따르면 국토위 소속 의원 31명 중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하는 의원은 최대 11명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 친이(친이명박)계 의원 10명에 충청권 무소속 의원이면서도 세종시 수정에 찬성한다고 밝힌 이인제 의원을 더한 것이다. 결국 한나라당 친박계와 야당이 손을 잡을 경우 국토위 표결에서 법안 처리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상임위 처리가 난항을 겪을 경우 박희태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관련 법안을 직권상정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해당 상임위에 심사기한을 지정한 뒤 이 기간에 처리되지 않으면 직권상정 절차를 밟게 된다. 하지만 상임위 표결 처리가 어려워진 법안의 직권상정을 강행하는 것은 박 의장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설령 직권상정이 이뤄져도 본회의 처리 전망 또한 밝지 않다. 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되려면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재적 의원 291명이 전부 출석한다고 가정하면 146명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한나라당 친이계 의원 90여 명과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하는 중립 성향 의원, 소수의 무소속 의원에 일부 친박계 의원의 이탈 표까지 합친다고 해도 120표 이상은 확보하기 힘들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수정안에 반대하는 야당과 친박계 의원 50여 명의 결집력도 높은 편이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