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 ‘여대생 기숙사’(큰 사진)와 ‘나이트메어’의 한 장면. 캐릭터에 대한 관객의 관심은 ‘누가 살아남을까’보다는 ‘이번엔 어떤방법으로 살해당할까’에 쏠린다. 참신한 이야기 없이 잔혹한 표현에만 치중하다 보니 조마조마한 공포감보다 혐오감을 유발한다. 사진 제공 영화인
이야기가 참신하지 않은 탓인지 영화는 뒤로 갈수록 등장인물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자극적인 장면에만 의존한다. 머리가 잘리고 다리뼈가 드러난다. 목에 꽂았던 칼을 ‘서걱’ 빼내는 소리, 입에 술병이 꽂힌 채 질식해 죽어가는 사람의 핏발 선 눈동자가 세세히 묘사된다.
이 영화, 그래서 무서울까. 눈뜨고 보기 힘든 신체훼손 장면이 쉴 새 없이 반복되지만 9일 열린 시사회 객석 분위기는 덤덤했다. 서진호 다음 콘텐츠본부 차장은 “잔혹한 장면의 물량공세로 ‘이래도 안 무섭냐’는 듯 관객을 몰아붙이려 하는데 어디서 무서워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말했다.
더 끔찍하고 잔인한 장면을 보여줄수록 관객이 얻는 감정과 자극도 커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공포는 불안감을 갖게 하는 원인의 정체가 모호할수록 더 강하게 유발된다. 신체 훼손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잔혹한 장면이 불쾌감은 줄 수 있어도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어려운 이유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끔찍한 장면의 디테일한 표현에 치중한 공포영화는 ‘더 자세히 보여줄 수 있다’는 기술의 유혹에 붙들려 관객의 마음을 놓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여대생 기숙사 - 나이트메어 등
표현기술에만 의존 ‘이야기’ 부족
메시지 증발 말초적 자극에 치중
잔 인한 장면 반복땐 모방 우려도
잔혹한 영화로부터 관객이 받는 영향은 어떨까. 카타르시스(감정 표출로 인한 마음의 정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잔인한 장면에 대한 반복적 경험이 경계심을 둔화시켜 현실에서의 모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크다.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같은 좀비 영화, ‘할로윈’ ‘텍사스 전기톱 학살’ 같은 슬래셔 영화가 최근 리메이크되면서 스토리에 대한 창의적 재해석 없이 살육 장면의 상세한 묘사에만 공들인 인상을 주는 것은 그런 면에서 걱정할 만한 현상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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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나이트메어’ 예고편
영화 ‘나이트메어’ 티저예고편
▲ 영화 ‘여대생 기숙사’ 예고편
영화 ‘여대생 기숙사’ 스페셜영상
영화 ‘여대생 기숙사’ 뮤직비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