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 20주기… 문학평론가 이광호-강유정 씨 ‘김현 비평의 의미-한국비평 현주소’ 대담
문학이 더는 문화적 관심의 중심이 아닌 시대, 문학 비평의 자율성과 정체성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김현 20주기를 맞아 문학평론가 강유정(왼쪽) 이광호씨가 한국 비평의 현재를 되짚어봤다. 변영욱 기자
―세대가 다른 두 분은 김현을 어떻게 접하고 어떻게 읽었나.
이=김현 선생이 돌아가시기 몇 해 전인 1988년에 등단했기 때문에 가까이서 뵐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 세대가 그런 것처럼 그의 글쓰기에서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받았다. 예를 들어 김지하 시인의 ‘무화과’에 대한 평론 ‘속고 핀 열매의 꿈’이란 작품이 있는데, 시인의 무의식뿐 아니라 그 구절에 매료된 비평가 자신의 무의식까지 들여다본다. 주로 정치적으로 읽히는 김 시인의 시를 무의식을 갖고 읽어낸 것도 김현답지만 그 문장, 맥락에 매료돼 ‘시는 이렇게 읽는구나’ 하고 배웠던 것 같다.
강=그분의 전집이 발행되고 나서 그걸 읽으면서 공부했다. 비평가란 작가의 동반자이자 문학의 일부라는 것을 그분을 통해 배웠다. ‘매일 거울을 보며 자존과 자멸 사이를 오간다’처럼 인상적인 문장들에 밑줄을 긋고 베껴놓으며 위안을 받기도 했다.
이=공감과 맥락의 비평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김현 비평의 특징은 작품의 언어에 집중해 세심하게 텍스트를 읽어내고 작가뿐 아니라 비평가의 내면까지도 끌어내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불문학 전공자이자 대중문화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던 만큼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풍부한 맥락의 도서를 할 수 있었던 비평가이기도 했다.
강=그 이전에도 많은 비평가가 있었지만 주로 프랑스어권, 독일어권 문학이 원본 구실을 하고 한국문학은 비교 대상이 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김현은 한국문학의 가치를 살리는 문체의 힘을 발휘해 문예로서의 평론이 가지는 매력을 보여줬다. 작품에 대한 수려하고 정확한 평가뿐 아니라 이 글을 쓴 비평가가 누군지를 궁금하게 하는 거의 최초의 사례였던 것 같다.
이=김현 선생을 비롯한 4·19 세대의 등장으로 한국문학을 좀 더 주체적이고 본격적으로 읽어내려는 노력이 나타났다. 이후 ‘문지(문학과지성)’ ‘창비(창작과비평)’ 시대로 접어들면서 한국문학의 현장과 함께 활동하는 비평가 그룹이 생겼다. 김현이 그 그룹 속에서도 독보적이었던 것은 비평도 매혹적인 문학의 일부라는 사실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김현이 활동했던 시대와 지금의 비평 환경은 차이가 많다. 김현 이후 한국문학 비평의 상황을 짚어본다면….
이=김현 이후 20년간 많은 후배가 여전히 김현식 공감의 비평을 따라갔고 그게 압도적인 흐름이 됐다. 하지만 맥락의 비평에 있어선 후배들이 그를 넘어설 정도의 유연성을 보여주지 못한 게 사실이다. 문학이 문화산업의 일부인 다매체 시대로 진입하며 평론가가 전체 맥락을 짚어내는 게 더 힘들어져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평가로서 현재 고민하고 있는 점은 무엇인지. 그와 관련해 김현이 갖는 의미가 있다면….
강=폴 비릴리오가 ‘속도와 정치’에서 말하듯 문학이 생산·소비되는 속도는 현재 매체 환경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이 속도의 변화상에 문학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예측, 예단이 비평계 내에서 혼란스럽게 펼쳐지고 있는 과도기다. 김현 당대의 ‘훌륭한 발명품’이었던 문학계간지가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 바뀌어야 할 것인지도 고민의 하나다.
이=트위터나 웹진의 시대다. 언어가 빠른 속도로 명멸해간다. 이 시대 문학의 언어가 과연 무엇인지가 우리의 고민일 것이다. 그때마다 ‘이 복잡한 상황 속에서 김현 선생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질문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1942년 전남 진도 출생 △1960년 서울대 문리대 불어불문학과 입학 △1962년 ‘자유문학’에 평론 ‘나르시스의 시론’을 발표하며 등단. 김치수 김승옥 최하림 등과 동인지 ‘산문시대’ 발행 △1964년 비평집 ‘존재와 언어’ △1970년 ‘문학과지성’ 창간 △1988년 ‘분석과 해석’ 발간 △1990년 지병으로 타계
○ 김현 명문장
항상 4·19세대로서 사유분석
비평은 하나의 반성적 행위
“내 육체적 나이는 늙었지만, 내 정신의 나이는 언제나 1960년의 18세에 멈춰 있었다. 나는 거의 언제나 4·19세대로서 사유하고 분석하고 해석한다. 내 나이는 1960년 이후 한 살도 더 먹지 않았다. 그것은 씁쓸한 인식이지만 즐거운 인식이기도 하다.”
비평집 ‘분석과 해석’의 머리글에 실린 문장으로 문학평론가 김현을 떠올릴 때 빈번하게 등장하는 문구 중 하나다. 엄혹한 시대 상황에서도 한글로 사유하며 한국 문학의 새로운 감수성을 발견해낸 4·19세대 비평가로서의 정체성을 뚜렷이 보여주는 구절이다.
그의 비평은 꼼꼼한 읽기, 예리한 분석뿐 아니라 ‘김현체’라고 불릴 만큼 독특한 체취를 보였던 명문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비평은) 언어의 질감을 중시하며 타인의 사유의 뿌리를 만지고 싶다는 욕망에서 출발한다” “문학은 억압하지 않되,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비평은 심판이 아니라 비평가와 작가의 열린 대화의 장소” “문학은 꿈이다” 등은 평론가로서 그의 문학관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대표적인 문장들로 꼽힌다. 지병으로 타계하기 전해에 수상한 팔봉비평상 수상 소감에서는 30년 비평 일생을 압축하듯 이렇게 썼다.
“문학은 그 어떤 예술보다도 더 뜨겁게 인간의 모든 문제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 돌아봄을 다시 되돌아보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비평입니다. 비평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반성적 행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