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시뮬레이션으로 꿈☆을 이루는 사이버 파일럿들
관제탑의 유도를 받아 비행기를 활주로로 이동시키는 변 씨. 관제탑의 이륙허가를 받은 뒤 엔진 출력을 높이자 제트엔진이 굉음을 내며 비행기를 앞으로 밀어낸다. 천천히 조종간을 잡아당기자 비행기는 금세 지면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300피트, 400피트, 500피트….’ 고도계를 주시하며 상승속도를 조절하는 변 씨의 주머니 속에서 갑자기 ‘띠리리∼’하고 전화벨이 울린다. 비행기에 탑승할 때 휴대전화 전원을 끄는 것은 기본인데 조종사 변 씨가 ‘깜빡’한 것일까? 하지만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여보세요’하고 태연하게 전화를 받는 변 씨. 그렇다. 그는 지금까지 진짜 비행기가 아니라 PC로 구동하는 가상 비행 프로그램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를 조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변 씨가 사이버 공간에서 가상의 비행기를 조종하는 비행 시뮬레이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컴퓨터 운영체제 윈도를 만드는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제작한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 ‘플라이트 시뮬레이터(4.0버전)’를 접하면서 사이버 공간에서의 변 씨의 파일럿 경력이 시작됐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는 프로그램의 기능과 현실감을 더욱 높인 버전을 계속 내놓았다. 현재는 2006년 나온 시리즈의 열 번째 버전 ‘플라이트시뮬레이터Ⅹ’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경희대 의학전문대학원(1학년)에 재학 중인 ‘예비 의사’ 변 씨의 어린 시절 꿈은 전투기 조종사가 되는 것이었다. 난시 때문에 공군사관학교 진학을 접어야 했던 변 씨는 요즘 사이버 공간이긴 하지만 2, 3일에 한 번꼴로 비행기 조종간을 잡고 이루지 못한 ‘빨간 머플러’의 로망을 달래고 있다. 지금까지 변 씨가 비행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록한 비행시간만 총 3000여 시간. 지난해 대한항공 주최로 열린 ‘플라이트 시뮬레이션 콘테스트’에서 우승했을 정도로 실력이 탁월하다.
컴퓨터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는 신나게 총을 쏴 적기를 격추하는 여느 비행게임과는 달리 지루하기 그지없다. 사전을 찾아가면서 영문으로 된 비행교본을 독파하며 조작법을 익혀야 하기 때문에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어야 해서 종종 인내심과의 싸움에 비견되기도 한다. 단 한 번 매끄러운 착륙을 위해 수십 번 넘게 추락을 경험해야 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이 게임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매력은 무엇일까? 변 씨는 “현실에선 이루기 힘든 하늘을 나는 꿈을 가장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비행 시뮬레이션을 하는 순간만큼은 파일럿이 되지 못한 아쉬움도 잊는다”고 말했다.
○ 해외선 시뮬레이션 마니아층 두터워
국내에선 아직까지 시뮬레이션을 즐기는 인구가 많지 않지만 미국이나 일본 등 외국에선 가상공간에서 열차나 선박을 운행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기는 마니아층이 두텁게 형성돼 있다. 새로운 항공기 모델이 출시되면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구현이 가능하게끔 별도의 업데이트 프로그램을 만들어 전 세계에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회사까지 성업하고 있을 정도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김원중 기자 paran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