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콕핏’에 수천만원 들이기도
현실감 넘치는 체험을 위해 시뮬레이션 마니아들은 거금을 들여 나만의 조종석(콕핏)을 가지려고 한다. 수십 만∼수백 만 원씩 들여 수입한 조종기기로 홈 콕핏을 꾸미는가 하면(아래), 수억 원을 투자해 실제 항공기에 맞먹는 시뮬레이션 장비를 맞춤 제작하는 마니아들도 있다. 4t짜리 화물 트럭 적재함에 설치한 보잉737 기종의 조종석 시뮬레이터(오른쪽).
○ 가상 항공사에서 비행시험도
동호인들의 몰입도도 취미생활 수준을 뛰어넘는다. 영문으로 쓰인 수백 쪽짜리 조종 매뉴얼을 구해서 일일이 번역해 가며 읽는 것은 기본. avism(www.avism.com) 같은 전 세계 비행 시뮬레이션 동호인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료를 찾아 시뮬레이션 비행 도중에 적용해 보기도 한다. 최신 기종의 항공기가 나오기라도 하면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서 이 항공기를 몰아 볼 수 있게 외국 소프트웨어사가 개발한 유료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실행해 본 뒤 카페 게시판에 시승기를 올려놓고 공유한다.
○ 나만의 조종석 만든다
키보드와 마우스에 만족하지 못하는 시뮬레이션 동호인 중에는 좀 더 현실과 유사한 조작을 위해 시뮬레이션 조종기기를 수입해 방 안을 개인 조종실로 꾸미는 이들도 있다. 대개 비행기의 방향과 출력을 조절하는 기능을 갖춘 조종간(수만∼수십만 원대)을 구입하는 수준이지만, 수백만∼수천만 원씩 거금을 들여 실제 항공기와 거의 유사한 ‘콕핏(비행기에서 파일럿이 조종하는 공간)’을 방 안에 재현하는 ‘홈 콕핏족’도 있다. 이 씨의 경우 1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4t짜리 화물차의 적재함에 보잉737 기종의 콕핏을 본떠 만든 ‘홈 콕핏’을 1년 반째 제작 중이라고 했다.
훈련용 비행 시뮬레이터를 만들어 대학 항공운항과 등에 납품하는 누리항공시스템 최공순 대표는 “현실에 가까운 비행 체험과 복잡한 항공기 시스템을 경험하고 싶어서 ‘항공사에서 사용하는 것과 유사한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는 동호인들도 있다”고 말했다.
○ 항공관제, 열차 시뮬레이션도 인기
레일팬은 미국 시카고 철도 노선을 3차원 촬영한 이미지로 만든 역들을 주행하는 체험이 가능해 마니아층의 애정이 두텁다. 일본 ‘타이토’사가 만든 전차로 GO 시리즈는 일본 도쿄 등지의 전철 노선을 직접 운행해 볼 수 있어 일본과 한국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항공사 시뮬레이터는 기울기-진동까지 재현
시뮬레이터 직접 체험해 보니
항공기 시뮬레이터는 비행기 제작사가 아니라 시뮬레이터 제작 전문 회사가 만든다. 왼쪽은 누리항공시스템의 민항기 시뮬레이터. 서울메트로의 전철 시뮬레이터는 역사 화재나 선로에 승객이 떨어지는 비상 상황까지 설정해 기관사의 위기 대처 능력을 평가하는데 활용한다. 사진 제공 누리항공시스템
기자가 10일 대한항공 운항훈련원(인천 중구 신흥동)에서 탑승한 비행 시뮬레이터의 기종은 A300-600 모델. 주로 김포∼제주, 인천∼나리타를 왕복하는 기종이다. 기장석에는 기자가, 부기장석에는 대한항공 김형일 부기장이 앉았다. 김 부기장은 대학 4학년생이던 2005년, 대한항공이 주최한 ‘플라이트 시뮬레이션 콘테스트’에서 2위를 차지한 시뮬레이션 동호인 출신이다.
“왼쪽에 인천공항이 보이지요”라는 김 부기장의 말을 듣고 고개를 10시 방향으로 돌리자 인천대교와 인천공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김포공항 상공을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크게 선회해서 김포공항 활주로에 다시 착륙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20여 분. 하지만 생생한 현실감과 긴장감은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 모르게 만든다.
같은 날 서울메트로 인재개발원(서울 성동구 용답동)에서 탑승체험을 한 열차 시뮬레이터는 비행 시뮬레이터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작이 단순했다. 하지만 시뮬레이터를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 흥미로웠다. 지하철 4호선 기관차를 실제 크기로 재현한 시뮬레이터는 발차나 정차 시 몸이 앞뒤로 쏠리는 효과는 물론 레일을 달릴 때의 진동까지 재현했다. 브레이크를 풀고 가속레버를 작동시키자 정면 유리창 앞에 설치된 스크린 속의 화면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행구간을 실사 촬영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컴퓨터그래픽으로 재현한 화면은 선로 주변 건물의 간판 문구까지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사실감이 높았다. 이날 운행 체험 구간은 지하철 4호선 남태령∼산본 구간. 지상과 지하 구간이 혼재돼 있어 기관사 훈련생들의 실습에 많이 활용되는 구간이라고 했다.
체험 중 졸음운행 예방을 위해 운행 도중 기관사가 항상 잡고 있어야 하는 운전자안전장치(DSD)에서 손을 떼 봤다. “안전운전 하십시오”라는 음성경고가 들리더니 자동 제동장치가 작동해 전차를 정지시켰다. 역사(驛舍)에 화재가 발생하거나 플랫폼에 서 있던 승객이 선로 위로 떨어지는 상황도 설정할 수 있다. 비행 시뮬레이터와 달리 열차 시뮬레이터는 일반인의 체험이 가능하다. 서울메트로는 홀수 달 둘째 주 목요일에 일반인들에게 열차 시뮬레이터를 탑승해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차량기지 등을 둘러보는 견학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견학을 희망하는 달의 전달 20일까지 서울메트로에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