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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네 마음 알아” 비행 10대 다독인 청소년 참여법정

입력 | 2010-06-18 03:00:00


“오늘 법원에 재판을 받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말고 친구들이 널 도와주러 왔다고 생각하렴.”

16일 오후 5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가정법원 소년법정. 소년3단독 신한미 판사의 따뜻한 목소리에 법정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굳은 얼굴로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있던 재훈이(가명·16)의 표정이 환해졌다.

재훈이는 중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누구나 좋아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학년이 바뀌고 새로운 반에서 갈등을 겪으면서 나쁜 친구들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재훈이는 친구와 함께 길가에 세워둔 오토바이를 훔쳐 타고 달아나다가 붙잡혀 법원에 오게 됐다.

법원은 범죄를 저지른 적이 한 번도 없고 크게 뉘우치고 있는 재훈이에게 소년 재판을 받게 하는 대신 청소년 참여법정을 제안했다. 청소년 참여법정은 19세 미만의 소년이 경미한 비행을 저질렀을 때 또래로 구성된 청소년참여인단이 부과과제를 정해 판사에게 건의하는 제도. 재훈이와 부모님이 모두 동의해 이날 가정법원에서 처음으로 청소년 참여법정이 열리게 됐다.

이날 법정에는 재훈이 또래의 중학생 6명, 고등학생 1명이 청소년 참여인단으로 나왔다. 참여인단 학생들은 낯선 친구들 앞에서 비행 사실을 털어놓는 재훈이가 행여 마음의 상처라도 받을까 봐 표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질문을 적어 냈다.

“오토바이를 훔칠 때 같이 있던 친구의 태도는 어땠나요?”

질문 대신 또래의 눈높이에서 생각한 조언을 적어 낸 학생도 있었다.

“우발적으로 저지른 잘못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친구도 인생의 계획을 세워본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재훈이도 차츰 참여인단 친구들에게 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질의응답이 끝난 뒤 참여인단은 재훈이에게 부과할 과제를 두고 오랫동안 토론을 벌였다.

“영상물 제작에 흥미가 있다고 하니 재밌는 내용의 동영상을 만드는 과제를 내면 세상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볼 것 같아요.”

참여인단은 논의 끝에 재훈이에게 안전운전교육과 금연클리닉 참여를 과제로 내기로 결정했다. 이 밖에도 재훈이는 일기를 쓰고 또 다른 청소년 참여법정에 참여인단으로 참여해야 한다. 재훈이가 9월 1일까지 이 과제를 성실하게 수행하면 법원은 재훈이를 처벌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할 예정이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