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받던 조선여인의 恨귀신 이야기로 나타났죠”
최기숙 교수는 “처녀귀신 이야기는 조선시대 여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 당대 사람들의 심성체계를 드러낸다”고말했다. 양회성 기자
18일 오전 서울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는 “‘여고괴담’ 같은 영화에서도 알 수 있듯 예나 지금이나 한국 귀신의 대표는 처녀귀신”이라며 “‘왜 그럴까’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기문총화’ ‘청구야담’ 등에 실린 3000여 편의 야담과 고소설 865여 편을 분석했다. 조선시대 야담집은 사대부들이 한자로 창작하고 향유했던 사대부만의 여흥이었다. 최 교수는 “창작자가 남자이다 보니 남자는 죽어서도 가장의 권위를 지닌 조상신으로, 여자는 억울하게 죽은 원귀로 등장한다”며 “성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것 역시 당시 사대부들이 흥미를 느끼는 소재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처녀귀신들은 억울한 일을 겪은 뒤 한을 풀기 위해 귀신이 되죠. 하지만 그들의 말은 ‘귀곡성’으로 표현되는 공포의 대상일 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요. 여성에게 억압적이었던 현실을 반영한 겁니다. 올바른 심성을 갖춘 남성 관리만이 그들의 말을 듣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귀신이야기가 당시 사회의 부정적인 면만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 속에서 귀신들은 대부분 사적인 복수로 원한을 해결하기보다는 관리를 찾아가 법으로 악인을 처벌해 주기를 호소한다. 최 교수는 “창작층이 주로 사대부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조선시대 사람들 사이에는 선(善)에 대한 믿음, ‘인과응보 사필귀정’에 대한 보편적 믿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이 같은 이야기는 사회의 건강성을 보장해 주는 방편이기도 하다. 소외, 배제돼 왔던 약자와 소수자들이 이야기라는 형식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가 계속해서 귀신이야기 같은 환상물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실에서 말할 수 없는 것, 말해지지 않는 것을 꺼내놓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문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공포물 같은 환상소설은 특히 그 사람, 혹은 그 사회의 그림자와 어둠, 내면을 조명하죠. 문학의 본질과 일맥상통하는 장르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문제의 상당수는 시대에 따라 맥락을 달리하며 재등장하는 문제입니다. 처녀귀신이 나오는 공포영화가 매년 여름 개봉하는 것처럼 말이죠. 인문학자로서의 제 역할은 그런 고민들에 대해 옛사람들은 어떤 답을 했는지 전달해 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