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리’의 저자 나카무라 후미노리 씨(33). 그는 일본 도쿄 지하철을 오가는 소매치기가 뜻하지 않게 거대한 음모에 휘말리는 과정을 통해 현대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다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쪽 방면으로는 확실히 소질을 타고난 듯한 젊은 소매치기꾼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얼핏 이외수 작가의 ‘황금비늘’과 겹쳐진다. 부자들의 돈만 노린다는 나름의 원칙, 귀신같은 솜씨로 지갑을 빼내고 현금만 챙긴 뒤 태연히 다시 지갑을 원래 자리에 되돌려놓는 기술, 가난하고 오갈 데 없는 아이에게 비법을 전수해주는 과정 등이 그렇다.
신출귀몰의 소매치기 현장 이야기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호기심을 자극하며 시선을 끈다. 그러나 의협심도 있고 제법 인간적이기도 한 홍길동식 소매치기의 활약상 같은 게 펼쳐지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일본 도쿄 지하철을 오가며 소매치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니시무라는 사실 일종의 좀도둑에 가깝다. 그와 동료 이시카와는 ‘10억 엔 가진 놈에게서 10만 엔쯤 훔쳐봐야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신조로 자신들의 소매치기를 합리화하며 살아간다. 낡은 재킷이나 다 닳은 운동화를 신고 있다면 지갑이 바지 뒤춤에 삐죽이 나와 있어도 절대 훔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날 뜻하지 않게 그와 이시카와는 거대한 음모에 휘말려 들게 된다. 하루하루 출퇴근길 부자들의 지갑에서 현금을 빼내는 것으로 살아가는 한량들로서는 실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조직이다. 그 어두운 세계의 중심에 기자키라는 인물이 있다.
어린 시절 니시무라가 처음 도둑질을 하게 됐을 때부터 끊임없이 허공에 나타났던 거대한 탑의 환영은 기자키와 그의 조직이 갖는 이미지와 흡사하다. 개인이 알 수 없는 어떤 압도적인 힘이 각자의 인생을 멋대로 조작하고 휘저어 버리는 데 대한 니시무라의 두려움과 공포감. 이것은 극도로 조직화된 동시에 파편화되어 버린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느끼는 막연한 불안과 흡사하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