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공부해 나 같은 어린이 돕고 싶어”“하루 세번 인슐린 주사이젠 많이 아프지 않아나 때문에 불법체류 택한엄마아빠 보면 가슴 아파”
9일 경기 하남시 집에서 몽골소녀 정음(가명)이가 자신이 만든 돋보기로 책을 읽고 있다. 돋보기 하나로는 글자가 보이지 않아 문구점에서 파는 돋보기 두 개를 몽당연필에 붙여 만들었다. 하남=신민기 기자
9일 오후 학교를 마치고 집 근처에 있는 경기 하남시 모자이크 지역아동센터를 찾은 정음이는 동생들과 한바탕 뛰어놀았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공부도 가르치고 한국 생활도 도와주는 곳이다. 또래보다 키가 큰 정음이가 동생들을 업었다 안았다 했다. 갑자기 웃음소리가 멎더니 정음이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조용히 자리로 가 필통을 꺼냈다.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손끝을 바늘로 찌르더니 배에 달려 있는 혈당 측정기에 핏방울을 떨어뜨렸다. 각설탕을 우걱우걱 씹어 먹고는 진정이 됐는지 이마를 쓸어내렸다. 네 살 때부터 소아당뇨를 앓아온 정음이는 이런 혈당 체크를 하루에 일곱 번씩 한다. 배에 늘 꽂혀 있는 바늘을 통해 하루 세 번 인슐린 주사를 맞는다. 열 손가락에는 바늘 자국이 까맣다. 주삿바늘이 꽂힌 배도 딱딱해졌지만 “딱딱해져서 그런가, 이제는 많이 아프지 않아요” 하고 웃는다.
지역아동센터의 공부시간. 정음이가 이번에는 필통에서 장난감 돋보기를 꺼내 들었다. 정음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눈이 갑자기 나빠졌다. 시신경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해도 고쳐지질 않는다. 비싼 안경 대신 정음이는 직접 만든 장난감 돋보기를 쓴다. 문구점에서 파는 500원짜리 동전만 한 돋보기 두 개를 몽당연필에 테이프로 칭칭 감은 것이다. 코가 닿게 책 가까이 얼굴을 대고 한 글자씩 또박또박 책을 읽는다. 두통이 생겨 한 번에 국어책 두 장밖에 읽을 수 없지만 공부가 재미있다며 100점 맞은 시험지를 죽 늘어놓았다.
“엄마 아빠가 불법체류자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내일도 마음 놓고 학교에 갈 수 있게요.” 정음이의 꿈은 한국에서 걱정 없이 공부해 의사가 되는 것이다. “당장 중학교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한국에서 공부를 계속해 당뇨로 아픈 어린이들이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되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어요.”
후원 문의는 기아대책 02-544-9544.
하남=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