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들리는 걸 어떻게 해유~."
14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 남아공 월드컵 E조 네덜란드-덴마크의 경기. 네덜란드의 주 공격수인 로빈 판페르시(아스널)는 후반 16분 경 골문 앞에서 패스를 주고받다 골 찬스를 잡았으나 부심이 깃발을 들어 오프사이드를 선언했다.
주심도 곧바로 휘슬을 불었지만 판페르시는 그대로 돌진해 골을 넣었다. 오프사이드 선언을 무시하고 경기를 계속하면 경고를 받을 수 있는데 이날 한차례 옐로카드를 받은 판페르시로서는 퇴장이 우려되는 상황.
비행기 소음이나 록 콘서트 소리 보다 시끄러운 최고 144데시벨의 소리를 내는 부부젤라. 남아공 팬들의 응원도구인 나팔 모양의 부부젤라는 이번 월드컵 초반부터 화제를 뿌렸다.
●부부젤라는 지옥에서 온 악기?
남아공의 한 스포츠 기자가 '지옥에서 온 악기'라고 표현한 부부젤라는 엄청난 소음 때문에 처음 접한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영국의 BBC 방송은 중계방송 때 소음이 심하다는 시청자들의 항의에 시달린 끝에 방송에서 부부젤라 소리를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실제로 프랑스 케이블 방송국 채널플러스 TV는 모든 월드컵 중계방송에서 부부젤라 소음을 제거했다.
소음에 대한 항의가 빗발치고 부부젤라의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자 남아공의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축구팬들은 남아공의 방식으로 월드컵을 즐길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부부젤라 응원 금지 요구는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부부젤라가 대유행 조짐을 보이자 화들짝 놀란 곳은 영국의 윔블던 테니스대회 주최 측. 윔블던 대회 주최 측은 "21일 막을 올리는 윔블던 테니스대회 관람객의 부부젤라 소지를 금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런데 부부젤라는 '지옥에서 온 악기'가 아니라 '중국에서 온 악기'다. 부부젤라의 90%가 중국에서 생산된 것. 중국의 저장과 광둥 성에 있는 4~5개 업체가 생산을 해 이미 100만개의 부부젤라를 개 당 0.6위안~2.5위안(약 106~440원)에 수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불라니, 도대체 뭐야?"
반발력이 뛰어난 대회 공인구 자불라니에 적응을 못해 대회 초반 희비가 엇갈렸다. 공인구를 제작한 아디다스의 후원으로 지난 시즌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서 자불라니를 사용한 독일이 호주와의 경기에서 4골을 몰아넣자 "이 볼은 이상하다. 독일 이외의 팀들은 많은 골을 넣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영국의 한 언론 매체는 "아무리 자불라니가 새로운 공이라도 그린이 이처럼 어이없는 실수를 한 이유는 딴 데 있을 것"이라며 "월드컵 직전 애인과 결별한 그린이 이 때문에 실책을 한 게 틀림없다"는 그럴듯한 설을 내놓기도 했다.
어쨌든 자불라니에 적응하기 위해 멕시코 팀 골키퍼들이 미식축구공을 사용해 연습하는 등 자불라니를 잘 잡기 위해 각 팀 골키퍼들은 비상이 걸린 상태.
●"왜 월드컵을 못 보게 해?"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는 총 32개국 축구대표팀이 치열한 지역예선을 뚫고 출전했다. 자국의 경기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출전국 국민들보다 월드컵에 더 열광하는 국민들도 많다.
중국 수도 베이징 시는 월드컵이 시작되자 음주 운전 단속을 강화했다. 베이징 시 교통국은 비록 중국대표팀이 월드컵에는 나가지 못했지만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의 프로리그 선수들 팬이 많기 때문에 월드컵 기간 음식점이나 술집에 모여 술을 마시면서 경기를 관전하고 음주 운전을 하는 일이 잦을 것으로 예상해 이런 방침을 내놓은 것.
홍콩에서는 월드컵 경기를 놓고 거액이 오가는 내기 도박이 성행하고 있다. 홍콩 경찰은 한국-그리스전을 비롯해 예선 3경기가 펼쳐진 13일 하루에만 총 6500만 홍콩 달러(약 98억원)의 판돈이 오가는 '승부 알아맞히기 내기'를 주선한 도박 중개단을 적발했다. 경찰은 남아공-멕시코간의 개막전이 열린 11일에도 1600만 홍콩 달러 상당의 판돈이 오가는 도박판을 주선한 일당을 검거하는 등 월드컵 기간 내내 이런 단속이 벌어질 전망.
방글라데시에서는 한 명문대학이 월드컵 때문에 무기한 휴교에 들어가기도 했다. 방글라데시 다카대학교는 월드컵 경기를 보기 위해 조기 종강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26일로 예정돼 있던 방학을 앞당겨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현지 경찰 관계자는 "19일 월드컵 경기를 보기 위해 종강을 요구하는 학생들과 아직 시험이 남아있는 학생들 사이의 충돌이 발생해 5명이 다쳤다"며 "대학 측이 긴급회의를 열어 즉각 휴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대학 관계자는 "일단 월드컵이 끝난 후 다시 개교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태국에서는 총리가 아르헨티나를, 야당 당수는 영국을 응원하는 등 반정부 시위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태국 정계가 월드컵을 놓고도 각기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사팃 옹농터이 총리실 장관 등 모든 사람들은 영국에서 유학한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가 당연히 남아공 월드컵에서 영국을 응원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피싯 총리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마음이 바뀌었다"며 아르헨티나 지지를 선언하고 나선 것. 그러자 최대 야당인 푸에아타이당의 차렘 유밤룽 총재는 영국팀을 응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월드컵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소말리아 무장 세력들은 '월드컵 시청 금지'를 공표하고 시민들을 무더기로 잡아들이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15세 소년을 포함한 30여 명의 사람이 월드컵 경기를 TV로 봤다는 이유로 소말리아 이슬람 무장단체에 체포됐다.
외신은 증인들의 말을 인용해 "무장단체 요원들이 13일 저녁 모가디슈 북서쪽 아프고이의 개인 주택 2채를 급습해 독일-호주 경기를 시청하던 축구 팬들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이 무장단체는 소말리아 양대 이슬람 무장단체 중 하나인 히즈불 이슬람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BBC는 "소말리아 무장단체들이 월드컵 중계를 보다가 적발되면 공개 태형 또는 그 이상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전하며 "12일 중계를 보던 사람 2명이 무장단체 요원들에게 살해됐다"고 보도했다. BBC는 "이들이 월드컵 시청을 금지하는 근거는 2006년 나온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법에 어긋나는 모든 오락물, 비디오 게임이나 운동 경기 시청을 금한다'는 판례"라고 설명했다.
●축구황제들의 입씨름
1970년대 브라질의 '축구황제' 펠레가 아르헨티나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는 1980년대의 '축구황제' 디에고 마라도나에게 먼저 포문을 열었다. 펠레는 마라도나에 대해 "돈 때문에 감독을 맡은 인물"이라고 혹평했다.
펠레는 "마라도나는 직업과 돈이 필요해서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맡았다"며 "아르헨티나가 남아공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얼마나 고전했는지 잘 봤다. 그것은 마라도나의 잘못이 아니라 그에게 지휘봉을 맡긴 사람들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라도나가 2005년 내 도움을 필요로 해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갔었다"며 "거기서 축구도 함께 하면서 도와줬다. 하지만 내가 광고 때문에 도와달라고 부탁했지만 마라도나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펠레의 이런 독설에 대해 마라도나는 이렇게 말했다. "펠레는 박물관에나 가야한다."
독일의 '축구황제' 프란츠 베켄바워는 잉글랜드축구대표팀의 이탈리아 출신 명 지도자 파비오 카펠로 감독을 향해 비판의 화살을 쏟아 부었다. 베켄바워는 "카펠로는 잉글랜드 축구를 뻥 차고 뛰기만 하는 예전 축구로 되돌렸다"면서 "더욱 좋지 않은 것은 잉글랜드 축구에 개선할만한 여지가 별로 없다는 점"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카펠로 감독은 이에 대해 "다른 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관중석에 앉아 경기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쉽다. 하지만 경기를 똑똑히 들여다봐야 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