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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구자룡]2만명 파리 시위…목소리 힘 실리는 화교들

입력 | 2010-06-23 03:00:00


20일 프랑스 파리의 화교 밀집지역 벨빌에서 중국인과 화교 등 2만여 명이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최대의 화교 시위라고 한다. 구호는 ‘반폭력과 사회안전’. 이들이 준비한 하얀 유니폼 티셔츠 앞에는 ‘나는 벨빌을 사랑한다’는 프랑스어, 뒤에는 중국어로 ‘우리는 안전을 요구한다’는 문구를 새겼다.

이날 시위는 이달 1일 벨빌에서 결혼식 피로연을 마치고 나오던 화교 하객들이 동네 불량배들과 충돌하면서 화교 1명이 총기를 발사해 구속된 것이 도화선이 됐다. 최근 들어 화교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느는 상황에서 나온 ‘당연한 자구행위’인데 구속된 것은 억울하다는 분위기가 확산돼 프랑스화교화인회 등 화교 관련 5개 단체가 이날 집회를 준비했다.

시위대는 2km가량 행진하며 1시간 이상 질서 정연하게 시위를 벌였으나 시위가 끝나갈 무렵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지지 않은 채 거리의 휴지통과 길가의 차량 2, 3대가 불에 타는 등 격화됐다. 이어 화교 청년들이 경찰과 충돌해 최루탄이 발사되기도 했다.

주최 측은 이날 시위는 경찰에 신고해 허가를 받았으며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도 흔들지 않은 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충동적인 폭동이 아니라면 외국 교민단체가 주재국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것은 드문 일이다. 시위 주제도 특정 사안에 대한 항의가 아니라 ‘사회의 치안 수준을 높여 달라’는 것이다.

시위 다음 날인 21일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울분을 삼켜온 화교들이 각국에서 항쟁에 나서기 시작했다. 중국의 굴기(굴起·떨쳐 일어남)가 이들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전했다. 이어 신문은 최근 수백 년간 전 세계로 퍼진 화교가 그동안 어떤 수모를 당하고 살았는지, 중국이 강대해진 지금은 왜 그럴 필요가 없는지를 강조했다.

전 세계 화교는 주재국에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실리를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제는 모국인 중국의 경제 성장과 정치적 위상 강화 등을 배경으로 세를 과시하는 단계로 바뀌고 있는 듯하다.

환추시보는 이날 유독 한국을 지목해 “차이나타운 건설을 불허하기 때문에 시위 발생 여지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한국교민은 단체 구성도 쉽지 않고, 시위는커녕 단합대회를 위해 모이는 것도 어렵다. 중국이 국력이 강대해져 자신의 권리를 챙길 수 있게 된 만큼 남의 고충도 헤아릴 줄 알기를 바란다.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