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문학 작가 윤흥길 - 젊은 평론가 김나영 ‘전쟁’을 말하다

“파리똥만큼 작아보이던 폭탄 순식간에 참혹한 폐허 만들어 아홉살의 충격 날 오래 괴롭혀…
6·25는 세계역사가 행한 오폭…그로 인해 우리 삶 전체가 굴곡
참상 증언-분단전 동질성 확인…한권도 팔리지 않는다 해도 작가의 의무 계속해 갈것”
김=반갑습니다. 근황이 어떠신가요.

전쟁의 상흔과 분단 문제를 문학으로 다뤄온 소설가 윤흥길 씨(오른쪽)가 6·25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젊은 문학평론가 김나영 씨를 만나 전쟁과 문학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윤 씨는 “이 땅에 다시는 6·25라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전쟁과 분단마저 이해타산적으로 이해하는 인식과 사고 자체를 바꿔야 한다”며 “내가 가장 듣기 싫은 말 가운데 하나가 ‘이민이나 가버릴까’ 하는 말”이라고 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윤=1953년에 휴전이 된 뒤 7년 뒤인 1960년에 군대에 갔습니다. 당시만 해도 내 아들대가 되면 징병제가 사라질 거고 통일도 돼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그 상태 그대로 지속되고 있어요.
김=어린 시절 전쟁을 경험하셨는데 전쟁의 기억이 어떻게 남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윤=아홉 살 때 6·25가 터졌습니다. 당시 전쟁이 났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살던 전북 이리(현 익산시)의 시골 마을은 7월까지도 전쟁의 느낌은 없었어요. 그러다 수업 중에 이리역에 폭격사고가 났어요. 폭탄이 파리똥만큼 작게 내려오다 순식간에 커지면서 머리 위에 똑바로 떨어질 것 같은 공포에 질렸던 느낌이 납니다. 참혹한 풍경이었어요. 역 건물이 무너지면서 철근이 휘어지고 거기에 몸뚱이가 꿰어 있는 사망자도 봤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미군이 인민군을 타격하려다 실수로 쏜 오폭이었어요. 전쟁 때문에 죽거나 고통 받은 주변 사람들뿐 아니라 어린 시절 처음 접했던 오폭의 충격과 혼란도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습니다.
김=비극적인 체험이 선생님 문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요.
김=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6·25전쟁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고민하는 사회의 여러 부조리들도 상당 부분 전쟁과 연관돼 있다는 점도요. 하지만 대부분의 젊은 세대가 6·25를 지나간 사건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윤=내 입장에서 놀라운 게 바로 그 점입니다. 우리 주변에 전쟁이 어디 있느냐고들 하는데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면 우리 삶 전체가 6·25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아요. 군부독재, 군비지출, 징병제, 국제관계, 이산가족…. 모두 전쟁이 남긴 것들입니다. 6·25는 역사에 편입된 적이 없는 현재의 일입니다. 경제 논리를 들며 통일을 반대하는 젊은 세대들도 안타까워요. 분단으로 인한 수많은 제약과 비용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는 단견입니다.
김=그렇기 때문에 문학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윤=이런 시대에 작가가 감당해야 할 역할은 두 가지가 있을 겁니다. 작품을 통해 전쟁의 비인간적인 면을 증언하는 것, 그리고 이질화 돼가는 남북의 동질성을 확인해 나가는 것. 여기서의 동질성은 우리가 이데올로기로 인해 분단되기 이전 남북이 공유하던 전통과 관습 같은 것들이겠지요.
윤=분단문학은 작가로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이고 작가로서 의무라고 생각하는 주제입니다. 한 권도 팔리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까지의 작업을 계속 해나가려고 합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