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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이야기’ 20선]중세 유럽인 욕망의 분출구 ‘카니발

입력 | 2010-06-28 03:00:00


《“중세 (유럽) 사람들은 어디서 즐기고 놀았을까. 로베르 뮈샹블레(프랑스 파리 13대학 역사학 교수)는 ‘중세 사람들은 집에서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다. 광장 등의 공공장소에서 이웃들과 어울리며 그들은 신과 악마 등에 대한 상상 속의 공포, 전쟁과 기아 등에 얽힌 현실 속의 공포를 극복했다. 이것은 중세 때 축제가 왜 그렇게 많았는지 설명해 준다.”》


◇ 축제의 문화사/윤선자 지음/한길사

책의 제목이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이 책의 소재는 ‘축제(festival)’가 아니라 유럽, 특히 프랑스의 ‘카니발(carnival)’이다. 카니발은 기독교 국가에서 사순절(四旬節·부활절 전 예수의 황야 단식을 기려 육식을 하지 않는 40일의 기간) 즈음 열리는 행사다. 축제의 한 형태이긴 하지만 동의어는 아니다.

지은이는 머리말에서 프랑스 인류학자 장 뒤비뇨의 글을 인용해 “기쁨과 쾌락, 재생을 위한 파괴 등이 축제를 구성하는 요소이며 이것은 그대로 카니발의 본질”이라고 했다. 러시아 문예학자 미하일 바흐친도 “축제의 가장 대표적 형태가 카니발”이라 말했다고 썼다.

책에서 밝힌 대로 카니발에는 밝음만큼의 어둠이 공존한다. 일상 속에 억눌려 있던 욕망의 거침없는 배설, 음침한 어둠 속에서 비로소 자유분방함을 얻은 관능적 본성의 표출 등이 카니발의 이미지다.

기원을 돌아보면 이런 특성은 당연하다. 저자가 첫 장에서 설명했듯 카니발은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이교도(異敎徒)적인 행사다. 로마시대 후기에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뒤 사람들을 회유하기 위해 로마의 전통 축제였던 농신제(農神祭)를 받아들인 게 카니발의 시초가 됐다. 이것이 사순절 풍습과 시기적으로 맞물린 것이다. 오래전부터 이어 내려온 유럽 겨울 축제의 관행은 이때부터 사순절 전에 고기를 미리 배불리 먹으며 한바탕 질펀하게 놀아보는 세속적 종교행사로 변형됐다.

“교회는 어차피 근절할 수 없는 관행이라면 이런 식으로 기독교 안에 흡수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단기간에 일사불란하게 정착된 것은 물론 아니다. 중세 카니발이 괴기스러운 육체적 퍼포먼스를 강조한 반면 교회는 내적인 구원을 강조했다. 교회는 인간이 영혼을 통해 구원받는다고 가르쳤지만 카니발에서 인간들을 해방시킨 것은 육체였던 것이다.”

교회의 묵인 아래 확산된 카니발은 차츰 자유분방한 시민정신을 발현하면서 해학적 풍자를 통해 고위 성직자를 신랄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카니발에 주어진 의례적 형식은 교회가 마련한 최소한의 제어 수단이었다. 교회와 이따금 충돌하며 공존을 유지하던 카니발은 16, 17세기 종교 개혁기에 전환점을 맞는다. 교리의 엄정한 원칙을 바로 세우고자 했던 종교 개혁가들의 눈에 구습과 타협한 카니발이 좋게 보였을 리 없었던 것. 책의 마지막 장에서 지은이는 종교 개혁기에 카니발이 용도 폐기된 과정을 기술했다.

“종교 개혁이 성공하기 전 신교도들은 가톨릭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통축제를 이용했다. 여론을 조절하기 위한 수단, 복음주의를 선전하는 수단으로 쓴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전통축제는 본래의 ‘신화적 성격’을 상실했다. 그러한 변질이 몰락의 운명을 불렀다.”

책의 제목대로 축제 전반에 걸친 문화사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기보다 카니발 관련 주제에 궁금한 이들이 참고할 만한 책이다. 글의 내용과 관련된 이미지는 부족하지 않지만 출처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데다 구체적인 설명이 달려 있지 않은 것도 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